짝 꿍□ 정문준

2024-06-14 07:28:50

하얀 눈덩이마냥 날아온 공이 훈이의 발뒤축을 가볍게 툭 치고 떨어졌다. 훈이가 뒤돌아보니 저만치 히쭉 웃음을 그리면서 키꺽다리 강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쥐여져있다.

“히야! 너 축구재간 진짜 짱이다.”

“뭐, 너를 불러도 대답 없으니 한방 슬쩍 날린 거야. 그런데 넌 전화도 안 가지고 다니는 거야?”

“아직은… 울 아빠 병이 나으면 나에게도 핸드폰이 생길 거야.”

“그럼 이 핸드폰 너에게 줄게. 내가 쓰던 거지만 국산 명패야.”

“난 이 비싼 걸 싫어…”

“울 아빠가 전자상품유한회사 경리인 줄 너도 알지. 나에게 핸드폰 하나 더 있어.”

훈이가 한사코 받지 않으려고 하니까 성미가 불같은 강이가 핸드폰을 홱 나꿔채는 것이였다.

“그럼 이걸 던져버릴 거야!”

강이가 길가 쓰레기통에 핸드폰을 던지는 척하니까 바빠 맞은 훈이는 그 애에게서 도로 앗아냈다.

“그럼 그렇겠지. 우린 유치원 적부터 네 것 내 것 없이 지내던 짝꿍이잖아.”

이튿날 수학시험이 있었다. 문제 풀이를 척척 해놓고 한번 쭉 내리훑어보던 훈이는 뒤에 앉은 강이의 입바람소리에 귀바퀴가 열렸다.

“얘, 시험지를 우로 쳐들어. 문제 풀이가 몇개 막혔다.”

“안돼. 이건 시험이잖아.”

“너 이러기야? 짝꿍이란 게.”

“선생님과 친구들이 알면 어쩌자구?”

“그럼 핸드폰으로 시험답안을 사진 찍어 보내면 되잖아.”

늘쌍 씩씩한 기운이 넘치던 강이의 목소리가 싹 기가 죽어서 간절함이 차분하게 깔려있었다. 훈이에게는 차마 물리칠 수가 없는 짝꿍이였다.

자기 시험지를 사진 찍은 훈이의 손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 핸드폰을 뒤에 앉은 강이에게 넘겨주려고 할 때 가슴에서는 심장이 쿵쾅쿵쾅 방망이질하였다.

수학을 배워주는 녀선생님은 교단을 마주하고 교수안을 보고 있는 듯싶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훈이가 핸드폰을 강이에게 넘겨주려는 찰나! 선생님의 예쁜 눈이 학생들과 마주쳤다. 그만 화들짝 놀란 훈이의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 서슬에 선생님이 “어느 친구예요?” 하고 목청을 높이면서 이쪽으로 걸어왔고 친구들의 눈길이 한결같이 훈이 쪽으로 쏠리였다. 강이가 얼른 나꿔채려던 핸드폰이 선생님의 손에 들어갔다.

녀선생님의 목청은 번쩍하고 날이 섰다.

“핸드폰으로 시험답안을 찍어 보내다니요?! 일어서요!”

훈이가 머리를 떨구면서 일어섰다. 자책에 빠진 얼굴이 수수떡처럼 익어번졌다. 잇달아 강이가 껑충한 키를 일으켜세웠다. 선생님은 그들 짝꿍의 시험지에 빵점을 매겨주고 교무실로 불러들였다…

시험이 끝난 이튿날은 휴일이였지만 운동장은 들끓었다. 훈이는 아침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려고 교문 밖을 달리다가 멈춰섰다. 강이가 운동장에서 빨간 런닝 차림새로 공을 몰고 상대방 꼴문 쪽으로 쳐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3학년 2반과 축구경기를 벌린 것이였다. 강이는 3학년 1반 축구팀 팀장다웠다. 강굴진 곱슬머리에 공을 띄워서 이고 나갈 때면 멋진 서커스를 연출하는 것 같았고 상대 켠 선수들의 틈새를 노리고 쳐들어갈 때면 막을 수가 없는 불도젤 같았다. 키가 큰 만큼 힘꼴도 드셌다. 그러나 독불장군이였다. 훈이네 3학년 1반 축구선수가 사유로 서넛 빠진 통에 한결같이 떨쳐나선 상대팀 11명 선수를 밀어제낀다는 건 너무 힘에 벅찬 경기였다. 훈이는 이번 축구 경기에 자기를 빼먹은 강이를 가로보고 치떠볼 새도 없이 축구장에 뛰여들었다. 강이가 발로 공을 몰고 오다가 발등에 사뿐 실어 문대 앞에서 기다리는 훈이 켠에 슬쩍 넘겨주는 것이였다. 미끄러지듯이 굴러온 공이 훈이의 발치에 와 멈췄다. 그걸 발끝으로 살랑 차넣어도 상대 쪽 꼴이 터지는 절호의 찰나, 훈이의 헛발질에 공은 문대 우로 날아가버렸다. 하늘로 날아가는 공을 어이없이 지켜보던 강이가 씽 바람소리 나게 뛰여와 훈이를 마주하고 무섭게 째려보더니 우뢰소리가 터졌다.

“너는 헛다리질 선수구나. 나가!”

억울했지만 훈이는 할말을 잃었다.

반 축구팀 팀장의 호령을 맞설 수가 없었다. 축객령을 받은 훈이는 랑패상으로 뚱기적거리면서 운동장 밖으로 쫓기웠다…

그 뒤 며칠을 그들 짝꿍은 학교에서 만나도 서로 쓴 외 보듯이 지나쳤고 소매 끝도 스치기를 꺼렸다.

어느 날은 하학하고 교문을 나선 강이가 “흥!” 하고 코방귀를 뀌면서 앞을 치고 나가자 그만 화통에 불 달린 훈이가 씽하고 달려가 그 애의 앞을 막아섰다.

“너 나한테 정말 이러기야?”

“흥! 그날 네가 아니라면 나 혼자서라도 상대 쪽 선수들을 물리치고 꼴을 냈을 거야.”

“내가 실수했잖아. 넌 실수할 때가 없니?”

“실수? 히야! 세상에 그런 실수가 어디 있니? 꼴대문 앞에서 한발로 살랑 툭 차면 다 넣은 꼴인데… 여직 우리 축구팀에서 한번도 꼴을 넣지 못한 너에게 기회를 준 건데… 곰처럼 우둔한 건 할 수 없다니까.”

강이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씩 하고 코웃음을 날렸다.

“너는 곰이 아니라서 시험마다 꼴찌니?”

“뭐야?! 너도 며칠 전에 빵점 맞았지 뭐야?”

“누구 때문에?”

훈이는 키꺽다리 강이를 가슴으로 맞서며 대들었다.

그런데 강이가 한발 뒤걸음을 치면서 날이 섰던 목소리가 웬지 맥 풀리고 있었다.

“너 때문이지. 누가 너의 핸드폰을 나에게 넘기라고 했니? 너의 핸드폰에 시험답안을 사진 찍어서 나의 핸드폰에 띄워달라고 했지. 그럼 누구도 눈치채지 못해.”

“웃기지 마! 이제부터 시험에서 네가 빵점 맞아도 난 모른다.”

“흥! 그럼 우리 짝꿍 끝난다.”

강이가 손을 쳐들었다가 내리쳐 짝꿍을 칼로 베버리는 시늉을 하면서 훈이를 째려보았다.

“짝꿍 끝난다면 누가 무서워할 줄 알지. 퉤!”

훈이의 침방울이 옷에 튕긴 것처럼 강이가 펄쩍 뛰였다.

“너를 우리 반 축구팀에서 제명한다, 제명! 알았지. 흥!”

축구팀 팀장이니 그럴 권리가 없는 건 아니라서 훈이는 가슴이 싸늘했지만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난 이 핸드폰 안 가질란다.”

“뭐야?! 내가 준 걸 도루 받으라구? 흥! 날 째째한 계집애로 보는 거야. 이젠 너와 말도 안 한다. 알았지?”

“그럼 핸드폰을 쓰레기통에 던진다. 응?”

“네 맘대로 해. 이젠 우린 짝꿍 아니니깐.”

엄포를 놓고 강이는 공원다리를 건너 호화주택이 자리잡은 강 서쪽으로 쥉쥉 걸어갔다.

훈이는 자기네 아빠트를 바라고 공원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걷다가 저도 몰래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저만큼에서 키꺽다리 강이도 뒤돌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훈이는 와뜰 놀라면서 그만 홱! 돌아선다는 게 하마트면 비칠거리며 넘어질 번 했다…

집에 들어선 강이는 심사가 울적하고 사맥이 탁 풀리였다. 며칠 전에 3학년 2반 애들과의 축구 경기에서 크게 패한 여운만이 아니였다. 공원다리 쪽에서 뒤돌아 볼 적에 이쪽을 보고 섰던 훈이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얼비쳐왔다. 웬일인지 가슴이 찌르르 저려났다. 훈이에게 핸드폰을 준 건 집에 돌아와 배운 과목에서 모를 것 있으면 전화로 묻자던 마음이였는데… 수학시험에서 훈이를 어쩜 그런 난국에 빠뜨려놓았을가, 내 잘못이야! 하고 자책했다. 매번 여러 과목 시험에서 거의 백점을 맞던 훈이가 강이의 불찰로 빵점을 맞았을 때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가, 그리고 그 훈이가 곰 같은 덩치를 좀 까라고 축구팀에 불러들였던 내가 축구팀 팀장이라는 턱을 대고 자기의 짝꿍을 내쫓다니?…

음료가 담긴 잔을 들고 강이의 침실로 들어서던 엄마가 기척 없이 멈춰섰다. 강이가 탁상을 마주 앉은 채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음료를 강이의 앞에 놓으며 그 곁의 쏘파에 앉았다.

엄마가 손으로 강이의 이마를 짚어보려고 했다.

“강이야, 요즘 너 어디 아픈 것 아니야?”

강이는 엄마의 손길을 피하면서 울먹울먹한 얼굴빛으로 되고 있었다.

“아, 아니.”

“그럼 혹시 너의 학습 성적이 떨어진 거니? 엄마와 아빠가 단위 일로 바쁘다나니 집에 돌아와 너의 공부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너의 짝꿍 훈이가 널 좀 도와주면 안될가? 우리 두 집 사이 거리도 멀지 않으니까.”

그러자 홱 손을 내저으면서 강이가 신경질을 썼다.

“그 애 말 꺼내지도 말아요. 우린 짝꿍 사이를 끝냈어요.”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훈이는 네가 유치원 때부터 짝꿍 아니야? 아직도 생각나는구나. 어느 날 네가 점심밥을 먹고 체해서 유치원 선생님께 업혀 병원으로 뛰여가니까 훈이가 울고불면서 끝내 따라왔다더구나. 엄마가 전화 받고 달려가보니 의사 선생님이 배침을 놓고 있었는데 훈이가 너의 손을 꼭 잡고 “나도 침 맞아봤다. 겁내지 마. 응!”, “울면 더 아파. 참아라, 응!” 하고 힘주던 일을 잊었니? 그리고 네가 침 맞고 언제 아팠던가 싶게 일어나 걸어나오니 훈이가 너무 좋아 퐁퐁 뛰면서 “강이가 살아났다! 우리 짝꿍 만세!” 하고 병실이 떠나갈 듯이 소리치던 그 목소리를 잊었니? 의사선생님과 병 간호하던 환자 가족들도 놀라서 복도로 뛰여나왔지 뭐야. 그때 엄마는 너희들 짝꿍의 더욱 빛나는 앞날을 바라보면서 감동의 눈물이 울컥 솟구쳤었단다!...”

찰나에 강이는 “엄마!ㅡ” 하고 엄마의 품속에 와락 안겨들어 참았던 흐느낌소리로 어깨를 떨고 있었다.

“으흐윽! 훈이와 짝꿍을 그만둔 게 다 내 탓이예요. 내가 이제 훈이에게 전화하면 그 애가 받아줄가요?”

“그럼 엄마가 훈이에게 전화해줄가? 핸드폰을 이리줘.”

엄마가 쥐려던 핸드폰을 강이가 앗아 쥐였다.

“엄마, 제가 할게요.”

“애두 참! 그리고 정말 잊을 번 했구나. 아빠와 엄마는 요즘 시간 내서 훈이 아빠 병문안을 가려고 한다. 요즘 상태는 어떠하신지?…”

같은 시각에 훈이는 아직 두달 앞으로 다가온 기말시험엔 꼭 좋은 성적을 따내는 것으로 지난번 빵점 맞은 창피함을 지우려고 교과서를 펼쳤다. 그런데 글줄 사이로 강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고 있었다. 그번 시험에서 빵점을 맞은 건 자기 훈이 때문이라고 반성하고 있었다. 짝꿍이라면서 언제 한번 따뜻하게 강이를 찾아가 공부를 도와준 적이 없었다. 핸드폰에 시험답안을 찍어 보내려고 응한 것도 훈이 자기의 실책이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핸드폰으로 강이와 서로 모르는 부분을 묻고 알려주고 할 수가 있었는데… 정말이지 짝꿍으로서 뜨거운 성의가 없었다. 곰같이 살찐 훈이를 학급 축구팀에 넣으려 할 때 여러 축구선수들이 반대했지만 강이는 훈이가 뚱뚱한 살을 까면 중앙공격수가 될 거라고 우격다짐을 써서 받아주었던 것이다. 그런 강이가 축구장에서 축객령을 내린 것은 자기의 뒤처진 공부를 진정으로 돕지 않은 훈이에 대한 반격이 더 컸을 것 같았다. 훈이는 핸드폰을 손에 잡고 자꾸만 매만지였다. 내 잘못이 크니까 내가 전화해야 한다. 그러다가 강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쩔가. 두 세번 전화를 하면 마지못해서라도 받을 거야. 내가 먼저 사과하면 꼭 받아줄 거야…

종래로 이처럼 강이를 두고 망설임에 모대겨 본 적은 없었다. 둘 사이가 10만 8천리 떨어진 느낌이 들자 훈이는 울컥 눈물이 솟구치면서 “으흑!” 하고 흐느낌 소리를 흘렸다. 전화가 아니라 강이의 집을 찾아가야 해! 하고 큰 다짐을 하면서 훈이가 벌떡 일어설 때에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와락 핸드폰을 잡아쥔 훈이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훈이야. 너 지금 뭘하니? 밖에 나올 수가 있겠니?”

“응! 당장 나갈게. 강이야, 너 지금 어디야?”

“내가 축구공을 가지고 공원 운동장으로 가는 길이다. 거기서 만나자. 내가 공차기를 좀 배워줄게. 넌 그 뚱뚱한 살집을 까야 돼. 그냥 놔두면 병 난다더라. 알았지? 나의 학과 보충 공부는 래일부터 네가 좀 도와줘.”

“알았다고!”

대바람에 몸에 옷을 걸친 훈이는 시장에서 돌아오실 할머니에게 글쪽지를 남기고 아빠트 철문을 나섰다.

이번 기말시험에서 우리 짝꿍은 꼭 함께 우수한 성적을 따내도록 노력할 거야. 지난번 시험에서 수학 선생님께 끼친 실망과 노여움을 풀어드리고 강이의 부모님과 나의 아빠 병간호를 하는 엄마와 할머니에게도 기쁨 가득 안겨드려야지!…

  훈이는 어깨에 날개 돋친 듯 공원다리를 건너서 구름이 맑게 가신 해빛 속으로 뛰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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