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에 쓰는 시(외 3수)□ 김봉녀

2024-06-21 09:45:50

푸르렀던 날

옷깃 스치는 바람과 대화하며

길 찾아 걷고 또 걸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수줍은 처녀인양

발목을 잡았다


그 오솔길에

숲의 설레임 소리 시가 되고

산새 소리 시가 되고

풀꽃들 벙그는 소리 시가 되고

나무들이 온몸으로 시를 쓴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

바람이 화답하는

오솔길 걸으며


숲을 이루는 서책들이

켜켜이 쌓여

저 먼 산에 닿겠지


오곡밥


정월 대보름 날

흰옷 입은 사람들 단란히 모여

오곡밥 먹고 윷놀이 하는 날


따끈한 오곡밥 푹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밥 대신 울컥 설음이 북받친다


엄마가 지어주시던

팥 넣고 찹쌀 넣은 오곡밥

엄마표 진수성찬


하늘 가신 할머니

구천에 떠돌지 마시라

한 대접

시골선생 아버지 무병무탈하시라

한 대접

길 떠난 오빠 배 곯지 말라

한 대접

줄 쳐진 찬장 우에 얹어놓고

합장하고 중얼중얼,

서둘러 떠놓던 우리 밥그릇


오늘도 저 달 속에서

치마섶으로 땀 찍으시며

오곡밥 짓고 계실

울 엄니


마을


내 누이

노래소리 같이 돌돌 흐르던

앞 내가 물소리 어데 갔소


평안을 기원하듯

하늘하늘 피여오르던

굴뚝 연기는 어데 갔소


지저귀던 산새소리

갓난아이 울음마냥

적막을 찢으며

허공을 맴돌고 있소


병풍처럼 마을을 둘렀던

참대숲이 세월 잡고

몸부림치오


바람이 윙윙 울며

내 등에 업혀 떠나질 않소


순이의 계절


연분홍 살구꽃이

함초롬히 피였습니다

순이의 상큼한 얼굴

화사한 웃음 같은


연분홍 살구꽃이

뚝뚝 떨어집니다

순이의 볼우물 타고 쭈룩쭈룩

분향기 씻어내리던 눈물 같은


연분홍 살구꽃이 피고

연분홍 살구꽃이 지는

피고 지는 사랑 같은


꽃잎이 뚝뚝 떨어지듯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이 계절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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