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소 (외 4수)□ 문정

2024-06-28 10:07:24

우리 집 소는

아버지의 말을 아주 잘 들었다

오른쪽으로 돌라고 하면

절대 왼쪽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그런 소랑 닮아서인지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누구 말도 듣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항상

소가 먹은 다음에야

당신이 식사를 하셨고

소가 아프기라도 하면


손에 땀을 쥐고

안절부절 못하며

밤낮으로 곁을 지키셨다


소의 눈에는 늘 푸른 하늘이 흘렀고

아버지는 그런 소를

하늘처럼 모셨다


내가 어떡하다 대학에 붙고 보니

학비가 없었다


평생 눈물을 모르셨던 아버지는

소잔등을 어루만지며

흑흑 흐느꼈다

소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슬프게 흐느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아버지는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셨는지

이 세상의 손을 놓으셨다


소도 데리고 같이 가셨는지

요즘은 꿈에

아버지도

소도

자주 보인다



글자들을 줄 세워놓고


단어들은 좋겠다

‘우리말 사전’이라는 널직한 방에서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사니깐


아, 아니지


일부 단어들은 매일

누군가가 불러내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지만

어떤 단어들은

평생 가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어떤 단어들은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닌데

주인 잘 만나 출세를 하기도 한다


안성맞춤으로 토들과 손잡은 단어들은

시며 소설이며 시나리오까지

별별 곳에 다 등장하며

온갖 멋을 다 부린다


멋진 멜로디를 타고

세상 어디든 다 다니는 가사들은

공짜로 세계려행도 하니

너무 부럽다


어떤 단어들은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들 탓에

본의 아니게 억울한 욕을 먹기도 한다


글자들을 줄 세워놓고 보니

곱고 미운 차이가 없는데도

어떤 인연 맺는가에 따라

이쁜 단어도 되고

미운 단어도 된다



침 뚜껑을 열고


아침 뚜껑을 열어보니

빛이 간밤 어둠을 모조리 태우고

하늘이 아직도 온통 불투성이다


시뻘건 기지개가

하늘을 향해

하품을 한다


어제를 보내버린 오늘이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내게 차례진 하루 시간들이

샘물처럼 투명하고

시원하다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젠 지휘관인 나의 손에 달렸다



5월


아픔이 흘러가는 길목에

5월이 서있다


그 엉성하고 서글픈 이야기들이

범람이라도 할 것처럼 흘러가는 마당에

빛나는 장미처럼 5월이 서있다


연한 버들가지가

물 올라 휘친거리고

라일락이 향기를 툭툭 뿌리는 계절


겨우내 얼어있다가 드디여

풀려 흐르며

골짜기를 온통 명랑한 물소리로

가득 채우는 계절


초롱꽃도 좋고 민들레도 좋겠지만

산나물의 손 한번 잡아보고

토종벌도 되여보고 싶다


치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글만 쓰는가


모른다

모른다

알면 이러고 있지 않을 거다


나는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글을 쓴다

허구가 아니고 거짓이므로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그래도 고치지 못한다

알면서도 고치지 않으므로

내 시는 잘 팔리지 않는다


더불어 나는

내가 지금 소년인지

청년인지 로년인지도

모른다


모르길래 여기 이러고 있다

이러고 있길래 알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치매인가

  치매는 꼭 나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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