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향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있다
가난을 구질구질 씹으며
쪼들려 앉아있던 고향이
토스레 옷을 와락 벗어버리고
해빛 호수에 성큼 뛰여들어
묵은때를 말끔히 밀어버렸다
초가집을 박물관에 바치고
별장주택을 가져다놓았다
소수레 찌그덕거리던 흙길이
콩크리트 포장을 번듯이 입고
빛 고운 매미들을 불러들인다
축구장 같은 넓은 광장에
오색 댕기 푸른 하늘 휘감아
둥기당당 흰 구름과 춤춘다
고향이 시체멋으로
세상을 마주하니
고향이 아닌 줄 알았겠지
그래, 우리 고향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 고향은 제자리에 있다
밤에 꿈을 만들어 고향에 간다네
내 고향은 시골이라도
나비가
꽃송이와 함께 춤추고
산새가
푸른 나무와 함께 노래 부르고
인심 곱게 피는 울바자 너머로
웃음향기 사람향기 그윽한 동네
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며
고향아, 고향아
목메여 불러보던 그날 밤
나는 꿈에 고향에 갔다네
아, 꿈속에 있는 고향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나는
밤에 꿈을 만들어 고향에 간다네
형님은 원래 괴벽하지 않은데
형님은 원래 괴벽하시지 않은데
뜬금없이 괴벽할 때가 있다
한국에 왔을 때
불고기도 대접하고
생선회도 대접했는데
모두 입맛 안 당긴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시래기장국 자시고 싶다 하여
햇배추 곱게 썰어 끓인
토장국을 대접했더니
이게 어디 시래기장국이냐고
생트집에 숟가락 덜렁한다
그럼 어떤 시래기장국 자시고 싶은가고
안타깝게 물었더니
—거, 우리 집 외양간 처마밑에 달아맨
마른 시래기 데쳐 썩둑썩둑 썰어넣은
그런 시래기장국 먹고 싶다
형님은 불시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형님은 원래 괴벽하지 않은데
이렇게 괴벽할 때가 있다
눈 내리는 밤에
삼라만상이 잠든 밤에
눈이 내린다
싸락눈이 내린다
어둠을 조용히 다독이며
내리는 하얀 싸락눈
내려서는 마냥 우리 집
외양간 처마밑에 들려
마른 배추시래기에
흰 이불 포옥 덮어주고
하얀 꿈이 곱게 잠들게 한다
이젠 해가 눈뜨는 아침에
엄마가 마른 배추시래기 떼내여
뜨거운 물에 데쳐 썩둑썩둑 썰어
시래기장국 보글보글 끓인다
뜨근뜨근한 시래기장국에
노란 조밥 말아 먹으면
그 구수한 향기에 가슴이
얼마나 훈훈한가
눈 내리는 밤에
나는 꿈에 울었다
큰 눈이 내린 날
큰 눈이 내린 날
가야 할 길이여서
길 떠났다
하얀 바다에는
길이 없었다
그래도
무작정 걷는다
길인지 길이 아닌지
걸으면 길이겠지
앞만 보고 걷는 길에는
발걸음 휘청하지 않는다
큼직큼직 찍은 발자국
내 뒤에 길이 따라온다
내 발자취 뒤에
빠드득 빠드득
눈길의 숨소리 들려온다
세월과 사람과 나무
세월은 쉼없이 간다
사람들은 세월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나무는 세월을 즐겁게 바래며
제 몸에 세월이 주는 년륜을
예쁘게 감아넣는다
세월은 쉼없이 가야 하는
책임에 무척 충성하고
사람은 자기 욕심에
하냥 곤혹스러워하고
나무는 세상순리에
그냥 담담해지고
세월따라 가면서
그런 사람 닮지 않고
나무를 닮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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