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동의 산책□ 박경

2025-02-28 08:40:18

항상 밤이 시작되면 글을 쓴다. 낮에는 글도 내 마음처럼 일상에서 맴도느라 한줄도 나아가질 못한다. 반면 어둠이 당도하면 축 늘어졌던 감성이 다시 살아난다. 빛 아래 놓였던 많은 것들이 모습을 감추면 내 눈은 되려 밝아진다. 덕분에 밤이면 나는 더 많은 것을 본다. 그래서 밤이 좋다.

나는 방에 들어가 스탠드의 불을 켠다. 방안은 주위를 알아볼 만큼 적당히 어둡고 아늑하다. 창가에 있는 책상에 앉아 탁상등 스위치를 누르면 노트북 주위가 밝아진다. 나는 잠자코 앉아 미지근한 온도의 밤에 나를 맡긴다. 창문가의 촘촘한 습기에 약간씩 숨이 가빠온다.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단지내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퍼석거리는 어둠을 자꾸 건드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닫는다. 오늘따라 산책이 하고 싶어졌다.

오래된 외투를 걸쳐입고 나온 늦겨울의 날씨는 여전히 쓰라리다. 낮에 살랑거리던 봄기운은 어디에도 없고 일교차 때문에 몸은 움츠러든다. 밖에 드러난 살갗이 아릿하게 시려오는 걸 느끼며 나는 보도블럭을 따라 터덜터덜 걷는다.

나는 항상 이런 쌉싸름한 추위가 좋았다. 한기가 피부를 건드리면 과거 어딘가에 두고 온 내가 떠오른다. 어둑해진 거리를 걸어 집에 가고 있던 어린 내가 보인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혼자 웃으며 지금처럼 터덜터덜 걷고 있는 나다. 그 집에는 당연하게도 할머니가 차려놓은 저녁이 있을 것이고 밤은 조용히 깊어갈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런 상념에 잠겨 걷다가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때의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거리의 불빛에 잠식되여 하늘은 어두컴컴한 잿빛으로 물들어있다. 별들도 아마 엄동을 피해 과거로 려행을 떠났나 보다. 이제 곧 겨울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지.

나는 거리에 귀를 기울였다. 실없는 자동차 소리와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전동스쿠터 소리를 멍하니 들었다. 작게 진동하는 어둠이 멀리로 스며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딘가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숙명을 알 것만 같았다.

다들 인생을 려행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생은 려행이 아니다. 려행은 돌고 돌아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인생은 돌아갈 곳 없는 려정이다. 홀로 걸어 문턱을 넘는 과정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면 부쩍 쓸쓸하다. 앞쪽에 번화가가 보인다. 겨울의 도시는 네온도 낮은 채도를 유지하며 화려함이 한겹 벗겨진 느낌이다. 분주하고 왁자한 사람들의 모습은 블러가 씌여진 배경처럼 흐릿하다.

나는 그 한산함에서 설레임을 느낀다. 그런 처량함에는 이젠 모두 져버린 나무잎새의 태동이 있기 때문이다. 끝이 났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이다.

우수수 떨어지는 봄날의 벗꽃과 흐드러지는 배나무꽃이 저 앙상한 가지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나를 설레게 한다. 곧 부서질 듯 메말라버린 것에 끌리는 리유이다. 그 안에는 따뜻한 봄의 숨결이 있다.

겨울 끝은 결국 봄이고 낭떠러지 아래에는 단단한 대지가 펼쳐져있다. 그것을 아는 자의 배포와 한발 더 내디디는 용기가 바로 내가 겨울에 끌리는 리유이다.

겨울은 춥지만 따뜻한 계절이다. 사람들은 니트를 껴입고 핫팩을 꺼내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든든한 국밥과 된장찌개, 대추차와 율무차, 그리고 마음 가는 누군가의 체온.

인간은 스러져가는 이 계절의 아련함을 이기려고 온기를 찾아간다. 이런 날씨에 코끝이 시려오면 갑작스레 련락하고 싶어지는 사람도 늘어난다. 일상에 치대여 몇년 동안 안부도 묻지 못했던 친구가 생각나고 의례 잘 계시려니 생각하는 부모님도 떠오른다.

이제 불빛은 희미해지고 숨결은 거칠어지고 의식은 아득해진다. 헐거워진 나무가지 아래, 차거운 공원 벤취에 앉아 나는 꺼져가는 오늘이 차겁게 내뱉는 마지막 유언을 듣는다. 나는 하루의 시작과 마지막에 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아직 끝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아쉬워한다.

겨울밤은 이렇게 멀어지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지는 내 순간들과 이미 시체가 된 락옆처럼 쌓인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그 애틋함이 만들어내는 비장함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좋았다. 그 아쉬움이 좋았다. 그래서 끝나가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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