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통곡의 하늘이 훑고
간 자리
외진 산속에
누군가 세운 비목
차거운 죽음이여
앙상한 나무가지에
녹쓴 철갑모와
포연에 그을은 군복
저 철갑모에
쓰러진 용사들 흘린
선혈 력력하고
저 옷가지에 스민 화약냄새
붉은 기발의 메아리
텅 빈 하늘 떠인 비목 아래
평화를 베고 누운 넋
산새들이 찾아와 울어주네
쑥부쟁이 두 손 모아 고개 숙이네
금강초롱꽃
가신 님 오시려나
버선발로 오시려나
돌부리에 넘어질세라
금강초롱 불 밝혔네
초롱초롱 금강초롱
별처럼 반짝이거라
님 오시는 길
살펴 오시라
금강초롱 꽃등 밝혔네
봄이 오는 소리
쿵 쿵 쿵
봄이 동백꽃 아씨 데불고
걸어옵니다
찰랑, 찰랑, 찰랑,
봄이 풍경소리 데불고
달려옵니다
침묵하던
땅은 병든 가슴 헤치고
명경 같은 시내물은
씻은 녀인의 얼굴 같습니다
노오란 햇병아리는
유치원생인 양 줄지어
봄나들이 한창인데
뱃쭁, 뱃쭁…
구름 속에서 은방울 굴리는
종다리들 노래소리에
뭇꽃들도 휘청휘청
봄이 오는 소리는
산에 들에
메마른 내 가슴에
사르륵사르륵 시를 씁니다
봄내음 꾹꾹 찍어
시를 씁니다
홍시와 까치
시인의 집 뜨락의 감나무에
등불처럼 대롱대롱 달려있는
홍시 몇개
누굴 기다리나?
까치가 날아들어 말을 걸며
홍시 맛 좀 보자 하네
바람이 놀다 간 사이
시인과 까치가
나눠 먹는 홍시맛
저승이 어딘지는 몰라도
홍시는 제 몸 바쳐
문드러지네
시인은 홍시 보며 시를 낳고
까치는 홍시 쪼아 먹고
허공에 제 울음 흩뿌려
하늘이 높아만 보이네
담배꽁초
몸을 태워서
빠알간 꽃
피여나는가 했더니
혼을 태워서
귀소하는 연기 속에
재를 남기는가 했더니
재가 사라지는가 했더니
석류알 같은
홍보석 시가 깨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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