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활력중국 조사연구행’ 기자들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취재하면서 상상 속의 농촌마을을 찾아냈다.
‘광동’이라는 이 작은 촌은 연길시에서 서남쪽으로 20여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광동촌에 들어서면 깨끗한 아스팔트 도로가 쭉 뻗어있고 길 량쪽에는 넓고 평평한 논이 펼쳐져있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이 어우러져 가까운 곳의 넓은 논과 먼곳의 길게 이어져있는 산, 들이 한폭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이루고 있다.
기자가 논에 들어서자 은은한 벼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며 논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개구리들이 헤염쳐 놀고 있었다. 논 한가운데 세워진 밭 ‘전’자 모양의 전망대에서 광동촌주재 제1서기 시언붕은 “우리가 재배하는 벼는 산에서 내려오는 샘물로 키워낸다.”고 소개했다.
시언붕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면 ‘논그림’이 뚜렷하게 보인다. 서로 다른 색갈의 벼로 그려진 ‘행복광동 감은분진’ 여덟 글자가 아름답게 새겨져있다. 시언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쪽의 벼 품종은 ‘길갱 81호’이고 다른 한쪽은 ‘소립향’이다. 우리는 촌의 우수한 자연조건을 리용하여 과학육종을 하고 고품질의 입쌀을 생산해내고 있다. 예전에는 입쌀 1근에 2원 내지 3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과학기술 도입와 브랜드 육성을 실시한 후 현재 브랜드 입쌀의 가격은 1근에 최저 8원이고 가장 높은 등급의 입쌀은 1근에 50원까지 거래되며 일본, 한국 등 외국에도 수출되고 있다.
입쌀의 일본 판매 얘기가 나오자 광동촌 촌민 김군(43살)이 말문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광동촌에서 자라고 고중을 졸업한 후 일본에 류학갔다가 일본에서 입쌀브랜드를 매우 중시하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촌의 입쌀 질은 일본에 조금도 뒤지지 않으니 틀림없이 시장이 클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2009년 고향으로 돌아와 광동촌의 입쌀브랜드를 만들었다.
10여년간, 광동촌의 입쌀브랜드는 명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김군은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2024년까지 1200톤 이상의 유기농 입쌀을 판매했는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6배 내지 7배 증가한 셈이다. 지난달에도 300톤의 주문을 새로 받았는데 국제시장 수출은 우리 촌에서는 흔한 일이다.
입쌀산업의 발전을 통해 광동촌과 주변의 여러 촌, 400여가구의 공동발전이 이루어졌다. 69세의 광동촌 촌민 주매호는 60여무의 토지를 도급 맡고 촌과 함께 통일 경영하고 있으며 년간 순수입은 적어도 4만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본다. 촌의 번영에 대해 말하는 주매호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2015년부터 광동촌은 ‘화장실 혁명’을 추진해 전 촌 210가구의 화장실 개조와 하수도관 승격을 완수한 동시에 문화관광을 둘러싼 사업도 본격 시작했다. 광동촌은 아름다운 전원풍경과 조선족 민족특색을 바탕으로 촌의 유휴 주택기지를 통합하고 농업과 관광이 융합된 산업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 벼농사 체험장, 논밭 꼬마기차, 저공 케블카 등 놀이시설들이 논밭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있다.
기자가 촌의 관광객안내쎈터에 들어섰을 때 젊은이들이 조선족 전통의상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촌민들을 따라 조선족 전통김치 만들기 체험을 하고 일부 관광객들은 조선족 정통 음식을 맛보고 있었다.
시언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바로 제3산업이 제2산업을 견인하고 제1산업을 촉진하는 발전모식이다. 2024년, 우리 촌을 방문한 관광객은 연 40만명을 초과했고 촌 집체경제 수입은 101만원에 달한다.
살기 좋고 일하기 좋은 아름다운 향촌. ‘활력중국 조사연구행’ 기자들은 광동촌의 진흥과 발전이 바로 현재 많은 동북 향촌이 변신한 축소판임을 발견했다. 길림성 여러 지역의 향촌마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면서 향촌진흥의 새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신화사 기자 장박우 임군 곽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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