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십이간지 이야기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십이간지 유래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보면서 처음으로 매 띠가 고유한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였다.
나에게는 말띠 언니가 있다. 작가협회 시분과의 회원으로 주변에서는 꽤 이름을 알아주는 녀류시인이다. 이미 시집을 두권이나 출판하였고 지금도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말신의 성격을 닮아서인지 언니는 60대 후반이지만 지금도 문학이라는 푸른 들판에서 활력과 패기 넘치는 열정과 자신감을 지니고 씩씩하게 달리고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지만 우리의 인연은 옷깃을 스치는데 그치지 않았다. 말띠 언니는 나의 마음에 엄마같은 존재로 소증히 각인되여 있다.
말띠 언니와의 첫 만남은 10여년 전 연변작가협회 송년모임에서였다. 그날 모임에서 어떻게 되여 나는 언니와 같은 상에 앉게 되였다. 갓 수필을 쓰기 시작한 나였고 갓 작가협회 수필분과에 가입했기에 안면있는 문인들이 별로 없을 때였는데 말띠 언니는 내 이름을 듣더니 수필을 많이 읽어보았다면서 덕담을 해주시는 것이였다. 첫 인상에 너무 친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첫눈에 나는 멋스러운 언니의 매력에 끌려들었다. 훤칠한 키에 그 나이대에 보기 드문 미끈한 몸매, 굽슬굽슬한 단발머리 하야말쑥하고 갸름한 얼굴은 너무 예뻣고 그의 언행에서는 지성미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말띠 언니는 나와 만날 때마다 나에게 따뜻한 조언을 해주시군 하였다. 한번은 장춘에서 열리는 ‘청산’컵 문학상 시상식에 함께 가게 되였는데 시상식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우리는 마주앉게 되였다. 언니는 이윽토록 나를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서연이, 올해 수필을 많이 발표하였더구만. 수필을 많이 발표하는 것도 좋지만 발표하기에 급급해하지 말고 글감을 아꼈다가 좀더 무게있는 수필을 쓰면 더 좋지 않을가? 나도 금방 창작할 때에는 발표하기에만 마음이 급해서 많이 썼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글의 질이 떨어지더구만. 내 경험이니 참고하오.”
“선배님 고맙습니다. 저는 문인들을 별로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서 조언을 들을 데도 없는데 선배님이 이렇게 진심으로 말씀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나는 언니와 가끔씩 련락을 하게 되였고 우리는 시종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선배님과 가까워진 계기가 있었다. 암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날 세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문득 언니가 련계를 해왔다. 늦게야 수술을 받은 소식을 알았다면서 병문안을 오겠다는 것이였다. 극진한 사이가 아니였는데도 병문안을 오겠다니 나는 놀랐다.
주사를 맞고 온 몸의 힘이 풀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언니가 병실문을 떼고 들어섰다. 안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던 언니는 말없이 내 두손을 꼭 잡아주었다. 대뜸 따뜻한 온기가 내 몸에 스며들면서 마음이 울컥해졌다. 그날 언니가 해준 살뜰한 위로의 말과 따뜻한 정이 담긴 위문금은 나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였던가? 환난에 처했을 때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다고 나는 그날 언니를 다시 알게 되였고 언니의 따뜻한 마음과 넉넉한 인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언니의 형상은 내 마음에 깊이 자리잡았다. 그후 항암치료를 받는 내내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팥죽이랑, 소고기 장졸임이랑, 여러가지 김치들을 손수 담가서 택배로 보내주군 하였다.
그때부터 우리의 관계는 한발 더 가까워졌고 만남이 잦아졌다. 모아산에도, 해란강식당에도, 매화개장집에도, 신라뷔페에도, 백년돌솥밥집에도 우리의 발걸음은 무수히 찍혀졌다.
말띠와 범띠가 아마도 궁합이 잘 맞는지 우리는 서로 마음이 너무 잘 통하였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맥주 한잔 앞에 놓고 그가 쓴 시, 내가 쓴 수필을 둘러싸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보면 시간이 흐르는것 조차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할말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의 대화는 끝없이 흘러갔다. 그야말로 문학세미나가 따로 없었다. 둘이라도 문학을 담론하면 이것 또한 문학세미나가 아니던가? 주도서관에서 사업하다 퇴직하여서인지 언니는 지식이 무척 연박하였다. 그래서일가 언니와 대화하다보면 불쑥불쑥 뛰여나오는 력사이야기라든가 명구절에 나는 깜짝깜짝 놀라군 했다. 나도 딴에는 책을 많이 읽었다고 지부하였는데 언니와는 비교도 안되였고 언니앞에 서면 나자신의 노루꼬리만한 지식에 스스로 얼굴이 붉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선배님한테서 언니같고 엄마같은 푸근한 정을 느끼였고 문학에 대한 그의 깊은 열정과 시에 대한 깊은 사랑은 나를 감동시켰다.
나에 대한 언니의 진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몇년간 내가 경제상에서 혹독한 곤난을 겪고 있을 때 흔연히 자신의 정기저금을 깨뜨려 돈을 보내주던 언니의 그 진심과 은정을, 내가 생활난에 쫓기워 출국하던 날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공황까지 나와 나를 따뜻이 안아주고 오래오래 손을 저어주면서 배웅해주던 그 모습, 타국에 와서도 사흘이 멀다하게 건강도 여의치 않는데 어떻게 일하냐면서 건강을 돌보면서 하라고 늘 위로의 문자를 보내주군 하던 모습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언니의 관심과 배려는 생활의 역경에 처한 나에게 더없는 힘이 되여주었고 생활의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여주었으며 나는 참된 친구의 의미를, 작가의 덕성을 언니의 모습에서 진정 깨닫게 되였다. 나는 자연스레 선배님을 언니라 부르게 되였고 언니를 무척 따랐다. 우리는 지금도 몸은 비록 떨어져있지만 마음은 늘 함께였고 늘 문자가 오고 간다. 언니와 끝없이 오고간 대화에서 나는 속내를 터놓고 말하는 행위가 인생에서 닥친 불행과 고통을 이기고 슬픔을 성장으로 이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하지만 나를 탄복시킨 것은 ‘행복한 세상 정다운 목소리’라는 라지오프로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받으면서 다시 새롭게 알게 된, 작가로서의 언니의 참된 삶의 자세였다. 40분간의 인터뷰에서 함축된 언니의 인생담을 들으면서 언니의 아팠던 유년시절, 사업에 참가하여 어떤 일을 하든 자기 일에 대한 더없는 책임감을 지니고 헌신적으로 림했던 삶의 태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엄마에 대한 극진한 효성은 나를 깊이 매료시켰고 그의 겸손한 작가의 인격은 나를 감동시켰으며 특히 문학에 대한 그의 집념은 오래동안 내 마음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래서일가 지금도 시창작에 대한 언니의 남다른 열정은 식을줄 모른다.
이런 언니는 유머감각 또한 얼마나 뛰여났는지 언니가 있는 자리에서는 늘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생활이라는 노른자를 감싸 안은 웃음의 미학이 있는 언니, 말할 때는 목소리나 톤에 떨림이 없고 오히려 너무 담담하게 말하는 언니다. 인생의 밑바닥에 있는 서러움이나 처연함을 내세우지 않고 슬픔의 은하계를 단단한 중력으로 떠받치고 있는 언니는 그야말로 외유내강의 사람이다.
언니와의 인연은 지금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언니는 의연히 끓어넘치는 열정으로 붓을 놓지 않고 시창작에 황혼의 정열을 쏟고 있다.
언니의 푸근함과 넉넉함, 지성미 넘치는 인품 이런 훌륭한 언니가 내 곁에 있어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언젠가 내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여있다면 아마 언니와의 인연 덕분이 클 것이다. 어쩌면 언니와의 인연을 이어가면서 나는 다시 삶을 배우고 내 삶을 성숙시키면서 내 미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가? 그리고 언니에게 받은 사랑과 배려와 지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으로 갚고 있는 것이리라.
말띠 언니와의 인연을 아름다운 삶속에서 무르익혀가면서 남은 여생 문학의 길에서 손에 손잡고 보람찬 삶의 꽃을 활짝 피워가리라. 문득 언니가 쓴 시가 떠오른다.
시에게
상처도 풍경이 되게 하고
슬픔도 기쁨이 되게 하는 넌
푸른 꿈 끌어 올려주는 마중물이였다
나를 찾아 떠나는 머나먼 인생길
함께 하고 이끌어 주는 빛 한줄기
령혼속에 씨앗으로 살아 숨쉬는
생의 라침판이여!
앞으로의 인생길에서도 말띠 언니의 아름다운 문학인생이 영원히 황홀한 빛을 뿌리기를 두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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