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말 필요 없이
살아있다는 아니
지금 살고 있다는 메시지다
움직일 수 있다는
무언의 자호이고
아직은 쓸 만하다는 가치이다
성장을 멈춘 마른 강대 아니고
덧없이 흐르는 구름이 아니고
막걸리 한잔에 취하는 주객이 아니다
삶의 소중한 지표를 아끼는 일이고
생명의 연분홍 보람을 찾는 일이고
이생에 후회를 조금이나마 더는 일이다
일을 한다는 건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다
사는 그날까지 불타는 생의 노을이다
내가 누군가의 산이 되려면
내가 누군가의 산이 되려면
내 어깨가 산처럼 드팀없어야 한다
충분한 믿음이 되여 기댈 만한
충실한 버팀목이 되여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산이 되려면
내 자신이 산의 기상으로 서야 한다
오르는 이들을 달게 받쳐주는
유연한 등이 되고 건널목이 되여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산이 되려면
내 가슴에 나무도 키우고 꽃도 피워
언제나 아늑한 숲을 만들어
들뛰는 조화에도 꿈의 온상이 되여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산이 되려면
내 몸이 산의 마력을 지녀야 한다
철 따라 색다른 선물을 생성하며
모름지기 넉넉한 여력을 량산하여야 한다
어버이날의 감회
6월의 세번째 주일 어버이날
내 구좌로 며느리가 넣어준
500원이 얼굴 빠끔히 내밀었다
너무 생각 밖은 아니였다
평소에도 살가운 타입이고
례의 또한 밝다고 보아온 며느리니깐
그럼에도 효도를 받고 보니
어딘가 모르게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뭘 해줬던가?
물론 남들처럼 버젓이
알려지게 해준 건 별로 없지만
해야 할 의무는 착실하게 지켜온 터다
어찌보면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
부모와 자식간에도 례외는 아니다
나는 부모님께 어떻게 했던가를 돌이켜본다
땀방울
세월 절궈온 하얀 꿈이
방울방울 수액처럼 흘러
내 몸 말리우지만
떨어진 자리에는
언제 어디라 할 것 없이
콩알 같은 작은 꽃 피웠습니다
세월의 드잡이 심술에도
용케 버티는 꿈이기에
가끔 내 인생에 비꼈던
어두운 그림자 씻어준
짭조름한 하얀 소금꽃
삶에 빛을 주는 착한 꽃입니다
배운 건 그대로 두고 간다
세월에 씻겨 어렴풋한 와중에도
인차 파랗게 되사는 배웠던 기억
내 인생에 다시 쓸 날 있겠는가 했는데
약속한 듯 그날은 어김없이 찾아오더라
나누기처럼 깔끔하고
치륜처럼 맞물리는 행운
배워두면 언제 어디서든 다시
또다시 쓰게 되는 예상에 없던 기적
배움으로 점철된 인생에는 버릴 것이 없다
사는 날까지 남김없이 깡그리 바치고 간다
저세상 가서도 반짝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후회라는 낱말이 자리 틀 여지는 전혀 없다
갈 때는 우리 모두 학생이라 적는다
가서도 배워야 한다는 간곡한 기대이다
살아서 배우지 못한 여한이 있다면
가서도 보충할 수 있다는 위안이다
집으로 가는 걸음 가볍다
빈수레 끌고 나무하러 가는
황소의 걸음은 느리였다
궁둥이에 채찍이 떨어져야
마지못해 빨리 걷는 척 했다
언덕을 만나면 비비려 들고
좀 가파른 산등성이에선
아예 드러누우려 들었다
그래서 더 차례진 채찍의 세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무 한 수레 꽉 박아싣고
집으로 가는 걸음은
오히려 시원스러웠다
기다리는 이가 있어서일가?
여물 생각에 신나서일가?
아니면 꽉 박아실은 나무에
어떤 성취감이 들어서일가?!
대답 없는 황소의 속내
어찌 알 수 있으랴만
나래 돋히던 퇴근길 떠올리며
늙은 황소의 영각소리 한번 우렁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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