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가 된 장모님 □ 남명일

2026-03-27 09:01:42

알츠하이머병을 보통 로인성 치매라고 하는데 퇴행성 뇌질환이다. 민간에서 쓰는 “로망”, “로망이 나다” 또는 “로망을 부린다”는 말은 이 병의 증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초기에는 주로 새로운 일에 대한 기억력장애를 보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언어기능이나 사유기능 등 여러 면에서 이상이 점점 드러나며 나중에는 모든 일상생활 기능을 상실한다.

장모님도 지금 여러 기능을 잃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초기라는 진단을 받은 지 아직 1년이 안되였는데 거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오늘은 료양시설에 기거하는 장모님을 모셔내와 샤와를 시키고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날이다. 일주일에 두번씩 료양시설에서 모셔내오는데 그런 날이면 어떻게 변해있을지, 건강상황은 괜찮은지 걱정이 앞서군 한다.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안해와 함께 거뿐하게 샤와를 마친 장모님이 잠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채로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반겨주신다.

“동익이 아버지 오랜만이네.”

다른 사람은 잊을지언정 이 사위만은 거의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장모님이다. 그런 장모님을 보느라니 지난 반년 동안 한집에서 동거동락하면서 지냈던 일들이 어제 일처럼 스쳐지나간다.

지난해 7월, 오랜 병환에 계시던 장인어른이 세상을 뜨시면서 혼자 계시게 된 장모님을 맏딸이고 맏사위인 우리 내외가 모시기로 합의를 보고 우리 집에 모셔왔다. 장인어른의 생전에 장모님은 치매증상이 있었으나 그렇게 심하지 않아 누구도 중시하지 않았다. 허나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 된 후부터 치매증상이 심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학적으로는 알츠하이머병 초기증세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전에는 보지 못했던 장모님의 돌발언행에 당황하기까지 하였다.

처음 장모님의 이상 증상은 언어에서 나타났다. 저녁상을 치우고 안해와 장모님 이렇게 셋이서 텔레비죤을 시청하던 도중 장모님이 우리 내외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우리 엄마는 지금 돈화에 계시지?”

장모님의 깜짝 질문에 우리 내외는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쳐다보며 말을 못했다. 안해도 돌아가신 지 몇십년이 되고 자기도 어릴 때 봐서 인상도 없는 외할머니 얘기가 나오니 저으기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살 웃으며 구슬렸다.

“장모님, 무슨 롱담을 이렇게 하십니까? 장모님 년세가 얼마인데 어머니를 찾다니요?”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시던 장모님은 더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도 장모님은 가끔씩 돈화에 있는 친정집이 생각난다면서 찾았다.

“친정어머니가 지금 뭘 하시는지?”

그럴 때마다 안해는 정색을 해서 또박또박 설명을 하였다.

“외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돈화에 있는 외가집 집터도 오래전에 없어져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장모님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군 하셨다.

“엄마가 아직 살아계실 텐데… 보고 싶어.”

아마 사유가 그때 그 시점에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며칠 지나면서 장모님의 이런 사유는 돌발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낮에는 출근하여서 안해가 장모님 곁을 지켰었는데 어느 한번 친구한테서 온 전화를 받느라 주의하지 않은 틈을 타서 장모님이 집에서 탈출하고 말았다. 때는 추운 겨울철이라 홀옷차림으로 밖에 나간 장모님이 걱정되였고 어디로 갔을지 오리무중이였다. 급해난 안해가 나한테 핸드폰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가 집에서 나갔어요. 빨리 오세요. 찾을 방법을 대봐요.”

“이럴수록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하기오. 좀만 기다리오. 인차 갈 테니”

나는 안해를 눅잦히며 급히 택시를 불러 타고 집으로 가서는 오면서 생각해둔 방법을 안해에게 말했다.

“우선 우리 구역 파출소에 가서 우리 아빠트단지 cctv와 통로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기오. 그리고 엄마를 찾으면 당신이 자가용으로 엄마가 가고 있는 곳으로 가보고 내가 파출소에 남아서 계속 엄마 동정을 살피기오.”

해당 구역 파출소에 간 우리는 담당경찰에게 사건경위를 설명한 뒤 장모님이 나간 시간대를 어림 잡아 cctv를 확인하였는데 구역 파출소에 설치된 cctv 모니터를 통해 길거리를 거니는 장모님이 보여서 안해는 인차 차를 몰고 장모님이 거니는 곳으로 향했다.

무사히 장모님을 찾아 집에 모셔온 후 나는 장모님의 찬 손을 어루만지면 물었다.

“무슨 일로 집을 나갔습니까?”

“령감이 집에 혼자 누워 앓고 있어서 보러 갔소.”

이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아! 치매증상이 악화됐구나.”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우리 내외는 장모님의 일거수일투족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렇게 장모님을 살펴봐도 장모님은 그 후 여러번 집 밖에 나갔고 전보다 더 황당하게 말을 하기가 일쑤였다…

장모님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밤낮으로 엄마를 돌보는 안해의 피로감도 극에 치닫기 시작했다. 원래 면역력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던 안해는 엄마를 시중드느라 자기의 병세를 악화시켰다.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나는 외지에 있는 처제들과 토의하고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을 전문 양로시설에 모시자고 제안했다. 나의 이런 제안을 처제들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허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안해는 치매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엄마를 못 보내겠다고 딱 잡아뗐다.

“치매환자는 전문 봉사일군이 돌봐야 안전하고 당사자도 편하오.”

“그럼 일주일에 두번씩은 집에 데려올 수 있는 곳이여야 하고 집에서 가까운 양로시설이여야 해요.”

안해의 요구에 내가 그러마 하고 대답해서야 우리는 겨우 합의를 볼 수 있었다.

양로시설에 입양된 장모님은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빨리 적응해나갔다. 시설 담당자가 양로시설에 기거하는 로인들이 낮에 보내는 일과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우리한테 보내왔다. 동영상에서 장모님은 다른 로인들과 잘 어울렸으며 여러가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섰다. 여느때보다 환한 표정을 띠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는 장모님을 보느라니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가?” 하는 자책감까지 들었다.

우리 집에서 하루밤을 보내신 장모님이 아침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옷채비를 하셨다.

“여럿이 날 기다리는데 빨리 출근해야지.”

혼자말로 중얼거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되여가는 장모님이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통계에 따르면 로령화 시대에 들어선 지금 우리 나라 로령인구에서 치매로인이 차지하는 비률이 7%를 넘으며 60세 이상 치매로인이 15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부모님을 곁에서 봉양하면서 보내는 게 자식된 도리고 효성이라고 여기던 세월은 지나갔다. 부모님이 만년을 즐겁게 보내면서 스스로에게 맞는 생활리듬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가 아닌가 다시한번 생각해보면서 오늘도 장모님의 건행을 빌어본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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