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 갱신과 행복지수□ 김장혁

2026-05-08 09:47:29

어느 깊은 밤에 먼 강남에 있는 아들로부터 집을 사겠는데 선불금이 약간 모자라니 돈을 먼저 좀 보태달라고 전화가 왔다.

정기저금을 해지하자니 은근히 리자가 아까웠다. 당시 1년 정기저금 리자는 3.8%나 되였다. 그러나 아들놈은 기어이 나를 설득하려고 들었다.

“아버지, 지금 해마다 정기저금 리자보다 집값이 엄청 뛰여올라갑니다. 여기 집값이 한해에 3000원씩 껑충껑충 뛰여오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어느게 리득인가?”

“아버지도 낡은 소비관념을 갱신해야 합니다. 아버지 세대의 로인들은 몇십년 아글타글 돈을 벌어서 년세 들어서야 집을 사고 나서 ‘아, 나에게도 끝내는 자기 집이 있게 됐구나.’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대부금을 내서라도 집을 먼저 사놓고 새집 살림을 하면서 인생의 락을 먼저 향수합니다. 아버지한테서 빌린 돈은 벌어서 천천히 갚겠습니다. 아버지랑 옛날 로인들은 묵은 소비관념에 의해 먼저 집값을 마련하느라고 거의 반평생을 누리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처럼 고생 끝에 자기 집을 마련했을 때는 좋은 세월이 다 지나가고 황혼을 맞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때문에 낡은 소비관념을 버리고 현시대 젊은이들에게서 새로운 소비관념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평생 돈이란 거미줄에 얽매워 향수하지 못하고 살겠습니까?”

아들의 말에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더는 수전노처럼 눈앞의 정기저금 리자를 껴안고 아들의 요구를 거절할 힘이 없었다.

나는 정기저금을 찾아서 아들한테 집을 사는 선불금을 얼마간 보태주었다. 아들은 또 몇십년 기한으로 대부금을 백만원이나 내고 백여평방메터 되는 집을 끝내 샀다. 당시 아빠트 값이 폭등하면서 그 집에 들었을 때 즈음엔 400여만원으로 껑충 뛰여올랐다. 나는 아들의 충고를 들은 일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정기저금 리자를 아까워하다가 자칫 집을 사지도 못할 번하지 않았던가?

아들이 집을 구매한 일을 통해 나는 많은 계시를 받았다. 눈앞의 리자 몇푼에 미래를 저당 잡히며 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아들은 말없이 보여주었다. 관념이라는 낡은 옷을 벗어던질 때 비로소 세상은 새로운 빛으로 들어선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내 인생의 행복지수를 다른 방식으로 높여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친구는 화장실 휴지를 쓰기 아까워 헌옷을 가위로 베여 천쪼각을 썼다고 한다. 자식이거나 손님이 집에 오면 체면 때문에 천쪼각을 부랴부랴 치우고 아까운 대로 휴지를 화장실에 갖춰 놓는다고 하는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 친구는 절대 휴지를 살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 한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습관이 이미 몸에 배였기 때문이였다.

칠순 고개를 넘은 나의 고모사촌누나는 집 가까이에 남새시장이 있건만 한푼이라도 더 눅은 남새를 사려고 늘 자전거를 타고 몇킬로메터 떨어진 남새도매상점으로 다녔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딸들은 나이 든 어머니가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라도 날가 봐 말리면서 생활비를 푼푼히 보냈다. 하건만 고모사촌누나의 소비관념은 하나도 개변되지 않았다. 결국 어느 눈 내린 날에 자전거를 타고 남새도매상점으로 가다가 내리막길에서 미끌어 넘어져 다리에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 결과 십여년 동안 남새도매상점으로 힘겹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절약한 돈을 다 처넣고도 치료비가 모자라 자식들의 신세를 져야 했다. 돈이 더 들어간 것은 둘째이고 골절로 인해 생활을 자립하지 못해 본인은 두말할 것 없이 고통스러울 것이고 머리가 하얗게 세여서 누나를 간호하는 매형은 또 얼마나 힘겨웠겠는가?

고모사촌누나는 이른 남새철에 갓 장마당에 나온 신선한 오이나 가지는 비싸다고 사지 않고 저물어가는 늦가을이 다 돼 몇십전씩 할 때에야 늙고 시든 오이를 사서 먹는다고 하였다. 령감이 신선한 오이와 가지를 너무 먹고 싶어서 어쩌다 사오면 비싼 걸 사왔다고 야단친다고 하였다. 돈이 없어 그랬을가? 아니다. 부부간의 다달이 나오는 퇴직로임으로 신선한 오이나 가지수를 사잡수지 못할 가긍한 처지는 아니지 않는가! 누나는 항상 제일 싼 근들이술을 사서 매형을 대접했고 어쩌다 자식들이 몇십원짜리거나 몇백원짜리 술을 사다가 대접하면 기가 넘어갈 지경으로 푸념을 했다. 간혹 자식들이 음식점에 모시면 식사를 마친 후 먹다가 남긴 멀건 국물마저 비닐주머니를 달라고 해 퍼담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이런 희극은 모두다 그놈의 시대에 뒤떨어지고 좀스러운 소비관념이 머리에 꽉 들이박혀있기 때문이 아닐가.

나는 주변에서 비슷한 사례를 심심찮게 듣군한다. 생활형편은 펴인지 오라지만 소비관념이 따라가지 못하여 지금도 수입에 비해 누리지 못하고 살며 아끼고 아끼다 보니 깨알을 줏다 수박을 놓친 격이 된 사례가 많고도 많다.

일본에서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해변가에 보험궤가 페허 속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고 한다. 그 보험궤는 누군가가 생전에 허투로 쓰지 않고 한푼, 두푼 모은 돈을 넣어둔 유물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돈이 모자라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목숨이 모자라 돈을 다 쓰지 못하고 이 세상을 총망히 떠나간 비극이 아니겠는가?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반디불 같은 짧은 한생에 아껴 먹고 쓰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서야 무슨 락이 있겠는가!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전통적인 양로관념도 갱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대부분 로인들은 전통적인 양로관념에서 벗어나 자식들과 한집에서 살려 하지 않고 있다. 또 대부분 자식들도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하면서도 같은 집에서 사는 것만은 불편하다고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로인들은 아직도 전통양로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손들과 한집에서 살려고 한다.

한 부부는 맏아들과 한집에서 살 예산으로 평생 뼈빠지게 일해 번 돈으로 맏아들에게 침실이 세개 딸리고 널직한 객실을 갖춘 120평방메터 되는 집과 고급승용차까지 사주었다. 그런데 맏며느리가 한달도 안되여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나누울 줄이야. 맏며느리는 시부모와 생활습관이 맞지 않아서 한시도 함께 살지 못하겠다면서 아예 갓난애를 싸업고 친정집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둘째네도 부모를 모시지 못하겠다고 나누웠다. 그들은 “부모가 사준 집까지 가진 맏아들이 모시지 않는데 둘째가 모실 리유가 있습니까?”라고 하면서 세집을 맡고 살라고 하였다.

한평생 번 돈을 몽땅 두 불효자에게 떼우고나니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파인 량주는 늘그막에 어느 아들 집에도 가지 못하는 눈물겨운 처지로 돼버렸다. 뒤늦게야 정신을 펄쩍 차린 늙은 량주는 과단성 있게 아들 둘이 사는 도시를 떠나 자기가 살던 마을로 돌아가 살기로 마음먹었다.

로인들과 자녀들은 가치관, 소비관, 자녀교양관 그리고 생활습관, 양로방식 등 여러 면에서 관념차이가 있다. 한집이란 작은 공간에서 부모자식들이 함께 생활하면 천륜지락을 누리는 좋은 점외에 불편한 점도 많은 것 같다.

로인들은 잠이 적어서 새벽이면 일어나 집안에서 서성거리거나 늘 아침식사를 일찍 하는 습관 때문에 자식을 도와 밥을 지어놓고 지루하게 기다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휴식일이면 늦잠을 자기 좋아하며 아침도 먹네 마네 한다. 부동한 습관으로 인해 부모자식간에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 아니며 심지어 말다툼이 생기기 일쑤이다.

두 세대가 모순이 없이 손발을 맞춰가며 사이좋게 지내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따로 떨어져 지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부모와 자식이 멀리 떨어져있지 않고 지척에서 수시로 만나보고 로인들은 손자손녀들을 안아보면서 천륜지락을 누릴 수 있어 좋다. 한집이란 비좁은 공간에서 부모자식이 복작거리지 않고 일정한 공간을 두면 서로 간섭이 없고 말썽이 없어 좋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 손으로 사다가 끓여먹을 수 있어 좋고 시장하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어 좋다. 아무때건 옷을 더 껴입지 않고서도 화장실에 갈 수 있어 편리하고 자식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먹을 수 있어 좋다.

우리 로인들은 전통적인 양로관념에서 벗어나 자식들에게 기대여 살 생각을 버려야 한다. 로인들은 또한 년세가 들어서도 자식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미리 양로준비를 하는 것이 명지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우리 세대 사람들은 예로부터 아글타글 벌어서 정작 자기는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자식들이 다 크면 행복하겠지.” 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꿈은 어떤 먼곳에 가야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우리 아름다운 꿈을 구성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에게서 독립해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시대에 발맞춰 소비관념과 양로방식 등 여러 면의 관념을 부단히 갱신해야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신체, 유쾌한 마음으로 질 높은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것이 자식에게 보탬이 되는 길이 아닐가.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  
  • 많이 본 기사
  • 종합
  • 스포츠
  • 경제
  • 사회

주소:중국 길림성 연길시 신화가 2호 (中国 吉林省 延吉市 新华街 2号)

신고 및 련락 전화번호: 0433-2513100  |   Email: webmaster@iybrb.com

互联网新闻信息服务许可证编号:22120180019

吉ICP备09000490-2号 | Copyright © 2007-

吉公网安备 22240102000014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