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절’ 단상□ 김미월

2026-07-24 09:14:17

기자들에게는 ‘기자절’이라는 명절이 있다. 그렇다면 ‘편집절’은 왜 없을가? 취재는 기자가 하지만 취재의 결과물인 기사는 편집의 손을 거쳐야만 텔레비죤에 보도되거나 신문에 찍혀 나오는데 말이다.

기사 뿐이 아니다. 작가들이 써내는 작품도 편집을 통해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은 개인출판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정규적인 출판을 통해 세상에 나오려면 편집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기자절의 향연에 편집에게도 지분이 있는 것처럼 작품의 탄생에도 편집의 로고가 깃들어있다.

자고로 편집은 혼수를 지어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결혼식날 가장 예쁜 신부의 모습을 기대하며 한땀한땀 혼수를 짓는 것처럼 글을 소중히 대하고 예쁘게 다듬고 포장해주는 것이 바로 편집의 일이다. 하지만 결과물에 편집의 땀방울이 보이지 않기에 대부분 독자들은 편집이 하는 일을 모를 수밖에 없다. 작가의 독무로 착각할 뿐이다.

오랜시간 문학도서를 편집해온 직장 선배가 있다. 점심 먹고 함께 산책하면서 한동안 선배는 매일같이 편집을 맡고 있는 소설집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어도 나무랄 데 없고 구성도 정말 잘 짜는 것 같아.”

“이번 글은 더 좋아.”

“요즘은 일할 맛이 난다니까.”


이처럼 작가의 글을 인정하고 좋아하기에 단어 하나, 토 하나에도 쓸 뿐만 아니라 출판 규정에 어긋나는 부분도 교묘하게 돌려놓으며 작품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다루는 것이였다. 좋은 작가를 만나는 것이 편집의 복이기도 하지만 좋은 편집을 만나는 것 또한 작가의 복이다. 그 《흰수염고래를 만나러》를 손에 쥘 때면 아마 독자들은 작가에게 박수를 보낼 테지만 행간에 퍼지는 은은한 향기에는 편집의 숨결이 녹아있음을 이 글을 통해 알리고 싶다면 욕심일가.

작가에 대한 인정, 사랑은 곧 편집역할을 잘할 수 있는 시작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듯 만나게 되는 작품마다 소중히 다루는 편집이라면 리유 없이, 가차없이 삭제하거나 퇴짜를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왜 글을 쓰는지 몰라” 하는 태도라면 절대 이쁜 옷을 입혀줄 수가 없다.

편집에게 사랑이 바탕이라면 책임은 태도이다. 책의 표지에서부터 시작하여 내용의 문자 하나, 문장부호 하나까지 일말의 오점도 없이 인쇄에 넘겨야 하는 것이 편집의 책임이다. 작가들이 보내오는 원고가 어떠하든 정확한 결과물을 독자들에게 선물해야 하니까. 하여 모든 책의 앞부분이나 끝에 들어가는 판권 페지에는 그냥 편집이 아닌 ‘책임편집’이라는 이름이 박혀있다.

그리고 규범능력, 가공능력 게다가 습작능력까지 두루 갖춘 편집을 만나면 금상첨화이다. 최근에 출간된 《헤무지 1938》의 저자 최국철 선생님은 창작후기에서 “연변인민출판사 문예부에서 ‘강역마을 사람들’보다는 구체적인 제목이 더 합당하다고 하여 제목을 고치게 되였다.”고 밝혔다. 책에 대한 사랑과 일에 대한 책임, 탄탄한 문학소양으로 과감히 제안을 건네는 편집, 편집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작가-작가와 편집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가 싶다.

끄적이는 것을 취미로 하는 나에게도 그런 아름다운 만남들이 있었다.

8년 전 새로 나온 조선말규범에 관한 론문을 《중국조선어문》에 투고했을 때의 일이다. 나의 관점과 다른 부분을 토론하기 위해 주필이신 김계화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 그냥 수정해도 될 텐데, 대부분 편집들은 그렇게 할 텐데 당시 일개 교정원이였던 나에게 ‘장차 규범을 할 사람’이라며 추켜세우는 바람에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어정쩡해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날 한시간의 통화는 내가 문학에 심취해있는 지금도 일년에 한편만이라도 언어에 관한 론문을 쓰려고 하는 리유이고 힘이 되였다.

그외에도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 매주 한편씩 육아수기를 예쁘게 단장하여 위챗 공식계정에 게재해준 《중국조선족소년보》 김성화 선생님, 글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적시적으로 전달해줌으로써 다음 글의 습작에 도움이 되게 해준 《연변문학》 박진화 선생님,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가>라는 제목을 내용에 더욱 알맞으면서도 함축성이 있게 <직업병>이라고 수정해준 《연변일보》 리련화 선생님, 주인공에게는 ‘기리다’보다는 ‘기억하다’가 더 합당하겠다면서 수정의견을 보내주던 《청년생활》 최향 선생님… 고마운 편집들이 많고 많다. 호명되지 못한 선생님들도 마음껏 지정좌석을 찾아 앉으셔도 된다.

명색이 편집인데 ‘편집절’을 운운하니 ‘엎드려 절받기’라고 혹자는 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여 나는 아직 축하를 받을 만한 명분이 없음을 굳이 밝힌다. 만약 어느 날 나에게도 온 마음을 담아 우리의 문학작품을 최선의 선물로 만들어낼 기회가 온다면 선배처럼 사랑에 푹 빠질 것 같다.

  그보다 먼저 내가 끄적였던 글에 ‘혼’을 입혀줬던 모든 편집선생님들, 앞으로도 손잡고 함께 갈 나의 령혼의 단짝-편집선생님들께 나만의 ‘편집절’ 인사로 이 글을 바친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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