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그러나 열정을 품은 ‘룡문호’

2023-06-05 08:32:24

록음이 우거지는 계절이다. 연길에서 차로 1시간 푸근히 넘게,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푸른빛의 평원이 이어지는 룡문벌을 달려 이르는 우리의 목적지는 화룡시 투도진 룡문호국가수리풍경구이다.

풍경구에 채 닿기 전 120년도 훨씬 더 된 버느나무 한그루를 만날 수 있다. 투도진 정부에서 세운 표지판을 살펴보니 ‘변강의 길목에 서서 파란만장한 세월의 풍상고초를 버텨왔고 동시에 향수를 느끼게 하는 나무’라는 소개글이 적혀있다.

이윽고 목적지에 다달았다. 숲으로 뒤덮여져있는 이곳, ‘공기 비타민’이라 불리는 음이온이 풍부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곳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더니 피로가 저절로 해소된다.

지금은 룡문호라 부르지만 과거에는 아동저수지로 불렸다. 아동은 만족어로 뚱뚱하고 부유함을 뜻한다고 한다. 한때는 근처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이 도시락 싸들고 나들이 장소로 자주 들렀던 곳이였다.

지금은 화룡시에서 ‘생태수역 룡문호 국제 겨울낚시 축제’를 추진하면서 풍경구내에 겨울철관광에 사용될 표준화된 서비스시설이 구축되면서 룡문호수리풍경구는 사계절 관광, 오락, 레저 등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덩치를 불렸다. 피서철이 되면 이곳은 저수지 부근의 시원한 계곡으로 찾아드는 피서객으로 북적거린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지명통람》에 따르면 아동저수지는 지금까지 해란강류역에 세워진 가장 큰 수리중추공사로서 농업관개를 위주로 홍수방지, 발전, 양어 등 종합적인 효익을 갖춘 중형 저수지이다. 기재에 따르면 아동저수지는 일찍 1958년 8월에 건설을 시작했으나 자금과 기술의 부족으로 이듬해에 건설이 정지되였다. 그러다 1964년에 저수땜의 위치를 초보적으로 선정하게 된다. 1966년에 길림성수리청의 비준으로 다시 착공, 그 과정에 또다시 어려움을 겪다가 1970년에 어렵사리 다시 공사를 재개하고 1973년에 저수지땜을 완공, 1975년 10월부터 물을 가두기 시작했다.

100평방킬로메터로 이루어진 룡문호수리풍경구는 지난 2013년에 제13차 국가수리풍경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수역이 넓고 주변 삼림이 무성하여 산과 수가 서로 어울리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룡문호 저수를 이루는 강물은 장인강이다. 장인강은 화룡시 투도진의 황구령 산기슭에서 발원해 동남방향으로 흐르다가 룡문호에 흘러든다. 그리고 투도평원에 이르러서는 해란강과 합류하는 총길이가 50킬로메터인 강, 투도진의 옛 지명인 삼하진도 바로 장인강과 해란강, 복동하 등 3개 강이 만나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고요한 듯하지만 열정을 품고 있는 룡문호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마을은 유구한 력사를 지닌 룡문촌이다.

룡문촌은 화룡의 주요한 홍색관광기지중 하나로 손꼽힌다.

룡문촌에는 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지가 있다. 룡문촌 제5촌민소조에 ‘화룡현약수동쏘베트정부유적지’라고 씌여진 돌 하나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모양, 무늬, 색상을 찬찬히 눈여겨보면 호랑이를 련상케 하는 이 노을옥은 하남성 남양산으로 무게는 32톤, 길이는 9.1메터, 높이는 2.6메터, 두께는 0.65메터에 달해 같은 종류의 옥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한다.

유적지 바로 옆에 버드나무 한그루가 있다. 버드나무 옆에 박상활 렬사 기념비가 있다. 1931년에 도목구적위대 대장으로 파견된 박상활 렬사가 도목구로 떠나기 전에 심은 버드나무이다.

유적지에서 머지 않은 곳에 약수동 주제회랑이 지어져있다. 회랑에는 박상활 렬사외 김순희, 신춘, 최상동 등 28명 영웅렬사들의 사적이 소개되여있다.

1930년 2월에 설립된 중공연변특별지부위원회의 령도하에 4월 24일에 ‘5.1투쟁행동위원회’를 설립했다. 이어 ‘토지혁명을 일으키고 쏘베트정권을 수립하자’는 구호를 제기하고 전반 동북지역에 영향력을 파급한 이른바 ‘홍5월투쟁’이 전개되였다. 바로 이 투쟁과정에서 동북지역의 첫번째 쏘베트정권인 약수동쏘베트정부가 탄생했던 것이다.

1930년 5월 26일에 평강지역 약수동 및 장인강, 투도구, 아동촌 등 린근 마을의 1000여명에 달하는 촌민들을 동원해 약수동 상촌에서 약수동쏘베트정부 설립 대회를 가졌다. 정부가 설립된 즉시 80명의 청장년으로 구성된 약수동농민적위대를 건립했고 5월 30일 밤에 적위대를 필두로 농기구와 18자루의 소총 및 1개의 권총으로 투도구 일본령사분관을 습격하는 등 수백명의 군중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화룡현약수동쏘베트정부, 비록 며칠 지속되진 못했지만 동북지역에서의 첫번째 인민정권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남다르다. 아울러 화룡 ‘혁명의 요람’으로 일컬어지는 약수동에서는 70여명의 항일렬사들이 용솟음쳐나왔다.

지금도 이곳에서의 항일투쟁사는 계속 발굴중에 있다. 그만큼 룡문마을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이다.

  글·사진 신연희 김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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