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비 (외 3수) □ 정금룡

2023-09-15 08:40:23

남산 비탈에서 비바람 맞으며

자란 싱싱한 자작나무

산 아래마을 어느 초가집의

어엿한 마당비가 되였다


새벽부터 마당을 열심히 쓸었다

돌멩이 모래 먼지까지 말끔히 쓸었다

겨울이면 눈도 쓸었다

소 잔등도 쓸고 닭똥 개똥

가리는 것 없이 쓸었다


심지어 개싸움 말리는 데도 한몫하고

마당에 나온 쥐새끼도 때려잡았다

가리는 것 없이 힘들게 일하면서

살갗이 베이기도 하고

뼈마디가 끊기기도 했다


할 일 없을 땐 굴뚝 옆 처마 아래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고

피곤할 땐 누워 있기도 했다

못 말리는 세월 탓으로

몸이 여기 저기 망가졌다


닳고 닳아 뼈마디 부러지며

몽당비자루 되였다

더는 일할 수 없게 된 몽당비자루

조용히 아궁이에 들어가

흰 연기 피여올리더니

자작나무 손짓하는 남산으로 돌아갔다.



시골 빨래


예전엔 아낙네들 손에 이끌려

가마솥에 삶기기도 하고

더우나 추우나 개울가에서

방치에 두들겨 맞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고생은 없어도

누구에게나 세탁기 속에 갇혀서

휘둘리니 어지러워 죽겠다네.



갈대와 바람


갈대와 바람은 사이 좋은 친구다


바람은 갈대의 말을 잘 듣는다

갈대가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면 동쪽으로 불고 서쪽으로 향하면 서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면 남쪽으로

북쪽으로 향하면 북쪽으로

가리키는 대로 분다

갈대가 살랑살랑 손짓하면 살살 불고

온몸을 힘차게 흔들면 세차게 불어 댄다


갈대도 바람의 말을 잘 듣는다

가만히 서 있으라면 서 있고

춤 추라면 춤 춘다


갈대와 바람은 서로 아껴준다

바람이 갈대잎에 누우면

갈대는 하느적하느적 몸 흔들며

자장가를 불러주고


갈대가 적적해하면

바람은 갈대를 끌어안고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난다


바람이 심란해서 휘몰아치면

갈대는 온몸 휘저으며 광란의

몸부림도 서슴지 않는다


갈대와 바람은 사이 좋은 친구다.



산새 둥지


봄이 찾아 온 산길

연분홍 진달래꽃 핀 나무가지에

시골 농가 같은 산새 둥지 하나

편안하게 자리 틀고 앉았네


진흙에 지푸라기 섞어

부리 쪼아 지은 초라한 흙집

서녘에 노을이 잠들 때까지

문 여는 소리 들리지 않네


빈집의 외로움을

진달래꽃이

기둥서방인 양 바람을 불러

  달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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