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성기: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는다면 이 한생 유감없다”

2025-07-04 09:16:30

운남 등충 주민이며 항일전쟁사 연구자인 촌맹의 고향집에는 증조부 촌성기가 전쟁중에 증조모 라수근에게 쓴 절필서신 사본이 소중하게 보관되여있다. 매년 청명절이 되면 촌맹은 이 서신 사본을 펼치고 증조부의 이야기를 후세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촌성기는 자가 념결이고 1895년 운남 등충에서 태여났다. 그는 1909년에 운남 륙군강무당에 입학했고 이듬해 동맹회에 가입하면서 혁명에 뛰여들었다. 신해혁명, 원세개 토벌, 동정북벌의 피와 불의 로정은 그를 단련시켰으며 1923년 후에는 손중산이 건립한 대원수 대본영 소장록사참군, 중앙직할헌병사령 등 직을 력임했다. 1926년, 그는 북벌전쟁에 참가하여 국민혁명군 제31군 참모처장을 맡았고 1927년에는 제34려 부려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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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7월, 항일전쟁이 전면 발발한 후 촌성기는 국민혁명군 제3군 12사 34려 려장으로 있었으며 부대를 인솔하여 태원회전에 참가했다.

1938년, 전공이 뚜렷하여 그는 제3군 12사 사장으로 승진했고 명령을 받고 중조산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후 4년간 제3군 12사는 반석처럼 중조산 방어선의 요충지를 지키면서 촌성기 장군의 명성은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1941년 5월 7일, 일본군은 10여만명의 병력을 집결하고 100여대의 비행기와 수백문의 중포를 동원하여 중조산에 대한 맹공을 발동했다. 동선, 북선, 서북선 우군이 잇달아 퇴각했지만 촌성기부대는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일본군의 맹공을 막아냈다.

10일 정오까지 전투가 계속되면서 촌성기는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할 겨를도 없이 전투를 지휘했다. 부대를 인솔하여 돌격하는 과정에서 그는 가슴과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고 허리를 다쳐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영장 리진방은 그의 부상이 심한 것을 보고 병사들과 같이 진지에 남아있을 것을 권했지만 촌성기는 자신을 관여치 말고 신속하게 포위를 돌파하라고 지시했다.

13일 아침, 촌성기는 중상을 입은 몸으로 나머지 부대를 지휘하여 적들의 첩첩한 포위를 뚫었다. 모가만 진지에 이르렀을 때 부대는 또 일본군의 맹렬한 포격을 받으며 길을 잃게 되였다. 촌성기의 왼쪽 다리는 포탄에 명중되여 골절되면서 전투복이 피로 물들었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인식한 그는 자결로 장렬하게 순국하여 46년의 생명을 중조산의 항일전장에 바쳤다. 1942년, 촌성기는 당시 국민정부에 의해 륙군 중장으로 추서되였다.

전운이 짙게 깔린 5월초, 그는 안해 라수근에게 다음과 같은 절필편지를 썼다. “주둔명령을 받은 이래 중조산을 순국처로 간주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군인의 직책이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면 이 생에 유감이 없다.”

1986년 5월, 중화인민공화국 민정부는 촌성기를 혁명렬사로 추인했다. 2014년, 촌성기는 전국 첫 300명 유명 항일영렬과 영웅집체 명부에 선정되였다. 1989년, 촌성기 장군의 유골이 고향 등충의 국상릉원에 안치되였다. 묘비는 당지 특유의 화산석으로 조각되였으며 ‘항일렬사, 륙군 중장 촌성기 장군의 묘’라는 큰 글자가 새겨져있다.

“국상릉원이 개관하는 날마다 촌성기 장군의 기념비 앞에는 꽃들이 가득 놓여있다.” 항일전쟁기념관 해설원 촌파염은 촌성기 장군 묘는 국상릉원을 참관하는 중점해설점으로서 2012년 이래 1만여차의 촌성기 장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번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항일영웅 촌성기를 료해하고 영렬의 선혈로 물든 이 토지에 담겨진 혁명력사를 깊이 느낄 수 있길 희망했다.

촌성기 장군은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저버리고 전쟁터의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어주었다. 절필편지 속의 “이 생에 유감없다.”는 평온함과 순국시의 태연함은 하늘보다 높은 정신적 금자탑을 세웠다. 촌성기 장군은 나라를 보위하기 위해 전장에서 적들과 혈투를 벌리는 것은 군인의 지고한 영광임을 생명으로 증명했다.

  신화사 기자 림벽봉 조채림

来源:延边日报
初审:南明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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