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단에 피여난 국화꽃□ 최진옥

2023-05-26 09:54:30

추석을 맞아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부모님의 산소로 찾아갔다. 지난해 추석은 의외로 일찍 찾아와서 백로가 금방 지난 9월 10일에 들다 보니 산야는 아직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었다. 무릎을 치는 풀숲을 헤치며 비탈길을 걷노라니 길옆 소나무 숲속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오고 싸리나무 사이에 드문드문 피여난 가을 국화꽃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반기듯 어서 오라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 세월이 빠르기도 하구나. 어느새 또 추석이 되였구나. 이제 본격적인 가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게 되겠지.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아버지 어머니 만나러 가는 이 걸음이 쓸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청명과 추석이라는 절기와 명절이 있어 그나마 부모님을 만나러 다닐 수 있어 다행이다. 결혼한 딸은 친정의 산소로 다니지 않는다고 오빠들이 은근히 귀띔을 해주었지만 나는 내 고집 대로 해마다 청명과 추석이면 친정부모님 산소로 다녔다. 산소에 갔다 오면 아버지 어머니 얼굴이라도 본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산소에 다달아보니 엄마 제단 한쪽 귀퉁이에 들국화 한포기가 자라나있었다. 제단 세멘트 틈 사이를 비집고 오똑하게 선 품이 가냘프면서도 너무 당당해보였다.

“와! 국화꽃이다. 제단에 어떻게 국화꽃이 피냐?”

다른 곳도 아니고 제단 귀퉁이에 꽃이 피여났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저 하늘나라로 가신 지 40여년 만에 자식들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 국화꽃으로 변하여 내 곁을 찾아온 엄마인 것만 같아 너무 반가웠고 가슴이 저도 모르게 설레였다.

모든 꽃은 여름 한철에 활짝 피였다가 가을이면 떨어지는데 오직 국화만이 가을 하늘의 찬서리를 무릅쓰고 곱게 곱게 피여서 맑은 향기를 토한다. 하향을 하면서 관찰해보면 우리 고장의 들국화는 보편적으로 8월말부터 10월 초순까지 피여나는 것 같다. 여느 꽃처럼 호화롭지도 못하고 호함지지도 못하며 너무 수수하고 평범한 꽃이지만 그래도 그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손색이 없다. 꽃이 희소한 가을절기에 활짝 피여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더 끄는지도 모른다.

엄마제단 우에 핀 꽃은 한포기가 여섯가지로 갈라져있었는데 가지 끝마다 연보라색 꽃이 한송이씩 활짝 피여있었다. 엄마는 여섯송이 꽃으로 피여나 여섯 자식을 하나하나 그렸나보다.

꽃송이에 코를 대고 꽃의 향기를 맡아보았다. 무더운 여름날 빨래터에서 금방 목욕을 하고 나서 풍기는 엄마의 시원한 체취가 내 페부에 스며든다. 너무 좋다. 일에만 쫓겨살던 엄마는 땀 냄새에 절어 살았다.

꽃송이를 어루만져본다. 야들야들하면서도 촉촉한 촉감이 손끝에 닿이면서 너무 부드럽다. 관절통으로 고생하던 쇠갈구리같이 억세고 소나무 껍질같이 터실터실했던 엄마 손이 이렇게 촉촉하고 부드러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친다. 엄마의 아픔도 덜했을 텐데.

꽃대를 만져본다. 너무 가냘프다. 여섯가지에 여섯송이 꽃을 누구보다 곱게 피워내기 위하여 영양공급을 해주느라 가냘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무릎에 앉아 시래기밥에서 어쩌다가 눈에 띄는 좁쌀밥알을 골라먹느라 여념이 없던 나에게 쌀알 서너알씩 떠먹이던 엄마모습이 생각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에게 맨 쌀밥 한그릇 마음대로 지어줄 수 없이 가난했던 엄마였다.

꽃포기를 바라본다. 척박한 곳에 뿌리를 박고 완강한 의력으로 자라나 꽃송이를 피워낸 국화야, 가냘픈 체구로 여섯송이 꽃을 피워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가? 또 그 꽃을 지켜내느라 얼마나 모지름을 썼을가? 순간 엄마가 어쩌면 이 국화꽃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힘든 것도 잊어가며 가난 속에서 여섯 자식을 키워내느라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가?

국화의 꽃이삭과 전초는 페염, 기관지염, 기침감기, 인두염, 두통, 고혈압에 사용하며 다소 쓴맛이 있는데 소화불량, 위장질환에 쓰인다고 한다.

국화의 효능을 알고 나니 엄마께서 코로나비상시기에 자식들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러 온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지구가 코로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그때 엄마는 아마도 내 자식들이 비상시기에 건강관리를 잘하고 아무탈 없이 무사하게 이 고비를 넘기기를 바라고 찾아왔을 것이다.

국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한다. 엄마의 사랑이 피부로 마음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살아생전에 자식들에게 못다한 사랑이 아마도 엄마 마음을 괴롭히나보다. 그래서 40여년 동안 쌓이고 쌓였던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을 더는 참지 못하고 추석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식들 얼굴을 보려고 오늘 이렇게 꽃으로 변하여 자식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가?

자식을 향한 엄마 사랑을 어찌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엄마는 뼈를 깎아내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자식을 키우고 자식은 엄마사랑을 먹고 하루하루 커간다.

태여나서 몇달밖에 안되는 셋째 아들이 간질이 발작해 생명이 경각을 다툴 때 엄마는 아이를 업고 칠흑같이 어두운 칠리 남짓한 산길을 달려 사향을 얻어 먹이고 염라대왕의 손에서 아들을 빼앗아왔다.

제초기를 밀던 넷째 아들이 뱀에게 물렸을 때 엄마는 애지중지 기르던 긴 머리카락을 썩둑 잘라서 상처 웃자리를 꽁꽁 동여매고 량손으로 상처자리를 힘주어 마주 누르면서 뱀독을 빼느라 진땀을 뺐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아들에게 밤 사이 병고라도 생길가 온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아들 곁을 지켰다.

엄동설한에 얼음지치기에 정신이 팔려 노느라 손발이 어는 줄도 몰랐던 내가 저녁에 코를 풀쩍이며 감기증세를 보이면 엄마는 정통편 한알 먹이고 이불을 꽁꽁 여며주고는 내 곁을 지켜주었다. 땀을 쑥 빼고난 이튿날이면 언제 그랬냐싶게 툭툭 털고 일어났다. 정통편 한알의 효과보다도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감기를 몰아냈다고 믿는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우리 자식들은 잔병치레 없이 여느 집 아이들보다 튼실하게 자라났다.

엄마 제단에 피여난 국화꽃을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제단에 상을 차린다. 눈같이 새하얀 이밥, 찹쌀지지미, 삶은 돼지고기, 삶은 닭알, 마른 명태, 마른 낙지, 월병, 과자와 사탕도 가지가지이다. 제물을 차리고 나니 오빠들의 말소리가 귀전에 들려오는 듯하다.

“이 제단에 차린 음식을 엄마께서는 생전에 구경조차 못하셨구나.”

“우리 엄마의 제일 소박한 념원은 맨 쌀밥 한끼 잡수어보는 것이였지.”

“우리 자식들이 효도를 할 때가 되니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네요.”

그랬다. 산소를 찾아 부모님에게 인사를 올릴 때면 어김없이 반복하는 말들이다. 자식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고 한생을 고생만 하시다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신 엄마에 대한 애석함이다.

엄마, 국화꽃으로 피여 찾아오신 엄마, 사랑도 전해주고 그리움도 달래주고 회포도 나누어주었습니다. 엄마 꽃이 우리 자식들의 몸과 마음의 약이 되였네요. 병마와 싸워 이기라는 엄마 사랑의 메시지 너무 고맙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코로나 비상시기 건강관리 잘하면서 그 고비를 무탈하게 잘 넘겼으니 시름 놓고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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