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치’□ 김미향

2023-06-30 09:27:19

“아줌마~ 좀 빨리빨리 가져다줘요. 주문한지가 언젠데…”

“네~ 지금 나가요. 맛있게 드세요~”

이는 순자가 매일 제일 많이 하는 한마디다. 올해 쉰셋이 된 순자는 한국의 한 자그마한 골목 식당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 일하면서 매번 진상 손님들을 마주할 때마다 성격  같아서는 한마디 톡 쏘아붙이고 싶지만 상황상 그럴 수가 없으니 그냥 속으로 욕 몇마디 하는 게 전부다.

순자는 마흔이 거의 다되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애를 낳다 보니 아직 초중에 다니는 딸아이의 학비를 마련하느라 매일 지친 몸을 이끌고 어김없이 식당 일을 나온다. 옛날 같았으면 녀자 나이로 쉰이면 진작에 할머니 소리를 들었을련만, 요즘은 일흔이 넘어서도 일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쉰이 좀 넘어 식당 일을 하는 건 힘들다는 소리를 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다. 순자가 일을 다니는 식당은 사모님이 인심이 좋아 혼자 외국에서 타향살이를 하는 순자한테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기도 하고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둘이서 이런저런 대화도 하면서 서로의 말동무가 되여주어, 몸은 좀 고달프지만 그래도 마음고생은 별로 하지 않고 그나마 즐겁게 일하고 있다.

그날은 평일이라 점심시간에 회사원들이 우르르 한바탕 오고간 뒤로는 오후시간은 꽤나 한가했다. 얼마 전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며칠째 혼자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있던 순자는 그날 드디여 사모님께 얘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모님, 제가 이제 두어달만 더 일하고 중국에 들어가려구요.”

“이렇게나 갑자기요? 혹시 집에 무슨 일 생긴 거예요? 아니면 다른 데로 가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런 건 아니구요, 딸이 올해 9월에 고중에 들어가는데 고중부터는 옆에서 엄마가 잘 돌봐줘야 할 것 같아서요. 안 그럼 대학이나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요.”

“아… 딸이 곧 고등학교에 입학하는구나… 너무 갑작스러워서 내가 좀 당황스럽긴 한데 그래도 애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기니까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죠. 그럼 일은 언제까지 나올 수 있어요?”

“애가 9월에 개학이니까, 늦어도 8월 중순에는 들어가려구요. 8월에 열흘 정도는 더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요, 알겠어요. 5년 동안 거의 쉬지도 못하고 일만 했는데… 이제 집에 가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연변은 한국이랑 음식습관이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혹시 뭐 딱히 생각나는 거 있어요?”

“글쎄요… 요즘은 파는 음식도 다 너무 잘 나와서 딱히 밖에서 먹고 싶은 건 없고, 그냥 집에 가면 엄마가 해주던 까마치에 더덕구이랑 가지된장찜 먹고 싶어요.”

“더덕구이는 알겠고 가지된장찜도 대충 짐작은 가는데, 까마치는 뭐에요? 뭔가 물고기 이름 같기도 하고…”

“누룽지예요. 큰 가마솥에 밥을 하면 밑에 까마치가 한층 생기는데 그냥 먹어도 맛있고 따뜻한 물에 말아먹어도 엄청 구수하거든요.”

“그럼 그냥 한국에서 말하는 누룽지랑 같은거네요.”

“요즘 밖에서 파는 누룽지는 고르게 펴서 구워낸 거라 엄청 정갈한데, 까마치는 농촌 집에서 아버지가 불 때고 엄마가 밥 지으면 그냥 밑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라 두께도 고르지 않고 모양새도 파는 것보다는 많이 못하죠. 그래도 전 오히려 그게 더 맛있더라구요.”

“우리도 어릴 때는 농촌에서 그렇게 해서 많이 먹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거의 없고 시중에서 파는 건 다 일부러 만든 거더라구요. 근데 난 파는 것도 꽤 맛있던데. 순자 어머님 음식솜씨가 엄청 좋으신가 봐요.”

“그런 건 아니고 저도 나이가 들수록 어릴 적 부모님이 해주시던 맛들이 많이 그리워지네요.”

“나이가 들면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긴 하죠. 순자가 쉰셋이면 부모님은 년세가 어떻게 되세요? 부모님도 따님이 많이 보고 싶겠어요.”

“엄마는 올해 여든둘이고 아버지는 여든다섯이예요.”

“그럼 부모님 년세도 있으신데 부모님도 모실겸 집에 가는 게 맞는 거 같네요. 그럼 남은 두달도 잘 마무리해주고 중국에 들어가서도 우리 자주 련락하고 지내요. 5년이나 같이 일해서 정도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간다고 하니 내가 너무 아쉽네요…”

“부모님은 아직 정정하셔서…”

뭔가 더 얘기하려던 순자는 순간 아차 싶었는지 말끝을 흐리고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남은 두달을 하루하루 집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순자는 드디여 8월 중순에 집에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바삐 돌아쳤으나 공항까지 이동하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리고 또 연변에 도착해서도 뻐스를 두번이나 갈아타고 농촌으로 가다 보니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시간이 다되여가고 있었다.

시골집의 철대문을 열기 바쁘게 순자는 어린시절 방과후 집에 올 때마다 그랬듯이 큰 소리로 가족들을 불러댔다.

“엄마, 아부지, 막내딸이 왔어요! 하정아, 엄마 왔어!”

신발도 미처 신지 못한 채 한달음에 달려나온 순자 부모님은 본인들이 이미 여든이 넘은 것도 잊었는지 순자 손에 들려있는 짐들을 냉큼 들어주었다.

“어이구야, 어쩜 온다는 말두 없이 이렇게 불쎄루 오니? 미리 말해줬음 머 음식이래두 준비하지… 머 먹고 싶니? 지금이래두 인차 해줄게.”

“미리 얘기하무 엄마, 아부지 며칠 전부터 잠두 못 자면서 길 떠나는 딸 걱정할 거 뻔히 아는데. 그래서 말 안하고 그냥 왔소. 저녁엔 엄마 해주던 가마솥 밥 밑에 그 까마치 먹기 싶소. 그리구 짼비가매에 납작한 철가매 올리구 구워주던 더덜기 구이하구 가지에 된장 올리구 찐 거 먹기 싶소.”

“요즘은 다 전기밥가매루 밥으 해서 불 안 땐지두 오라다야. 니 아버지 보구 불 때보라구 하마. 근데 그게 제댈루 데갰는지두 모르갰다야. 그래두 랭장고에 니 좋아하는 더덜기랑 곰취는 계속 준비해두구 있어서 다행이구나. 지금 불 때무 바닥두 뜨겁겠는데, 너는 선풍기 켜구 침대에 올라가 좀 쉬구 있어라. 하정이는 좀 있음 수업 마치구 올게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일정 때문에 많이 피곤했는지 순자는 침대에 눕기 바쁘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지나 순자는 코를 파고드는 구수한 냄새에 눈을 떴다.

“일어났구나. 이것두 오랜만에 하다나니 제대로 됐는지 모르갰다. 한번 먹어봐라.”

순자 어머님의 료리솜씨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가마솥에 한 밥에서는 여전히 살짝 탄 냄새가 나고 그 밑에 까마치에는 이미 검게 타버린 감자의 흔적에 두께마저 울퉁불퉁했다. 일부러 만든 누룽지와는 달리, 고르게 짓눌려지지 않은 까마치에서는 쌀 본연의 향기가 났다. 더덕구이도 앞뒤로 고추장이 타긴 했으나 그래서 오히려 더 고소한 맛이 나는 것 같았고 가지된장찜은 순자 어머니가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으로 한 거라 정말 짜다 못해 쓴맛까지 났지만 이거야말로 순자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맛이였다.

순자는 바깥 날씨가 30도가 넘는 고온에 불까지 땐 구들장에 앉아 땀을 뚝뚝 흘리면서 어느새 까마치를 따뜻한 물에 말아 두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이 계셨다.

방학이라 동네 대학생 언니한테서 공부를 배우고 온 순자 딸은 오랜만에 보는 엄마가 허겁지겁 외할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다가 순자에게 말했다.

“엄마, 나도 래일은 엄마가 예전에 해주던 흐물흐물한 감자지짐이 먹고 싶어. 밖에서 파는 건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이 안 나.”

숟가락을 놓고 고개를 든 순자는 자신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여든이 넘는 부모님과 아직은 애된 모습의 딸애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갑자기 더운지 이마와 눈 밑의 땀들을 닦기 시작했다.

“엄마, 아부지 미안하오, 내 때문에 이 고열에 집에서 불 때느라 고생했소… 내 생각이 짧았소…”

“아이다, 니 먹기 싶다무 이 고열에 까마치 아이라 언배래두 만들어다 줘야지. 우리 이제 해밨자 니 밥으 몇번이나 더 해주갰니…”

  “엄마는 참… 왜 자꾸 그런 소리르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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