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자궁 1 (외 4수)​□ 백진숙

2023-07-07 09:33:22

삶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어느 날

자석처럼 마음 끄는 빛 하나

쏜살같이 날아와 나한테 꽂혔다

그 빛으로 널 만들어

내 자궁 옆에 소중히 집어넣었다


두번째 자궁

내가 만든 작고 아담한 령혼의 집


하늘과 땅 산과 바다

나무와 바위 꽃과 풀

해와 달과 별

이 세상만물 모두가 나의 사랑이거늘

그들과 사랑을 하면 난 인츰 입덧을 한다

늘 잉태하고 출산하느라 분주한 너


빛, 그것은 문학이요

두번째 자궁 속 아이들은

펄펄 살아숨쉬는 나의 시이거늘

뼈 깎는 산고의 아픔 지나

하나 둘 새 생명이 태여날 때의 그 희열


두번째 자궁

아 시의 고향

내 령혼의 푸른 채찍이여.


두번째 자궁 2


너한테 오는 데 반생이 걸렸다

너를 만들어 낡은 내 자궁 옆에

가지런히 놓은 데 또 십년이 걸렸다


내 령혼이 불꽃 튀고

세상 만물과 초점 맞추는 날은

작은 씨앗 한톨 물고 시가 오는 날

그걸 놓칠세라 냉큼 붙잡아

너한테 집어넣으면

어김없이 그것들을 잉태하는 너


새와 사랑을 하면 새를 낳고

꽃과 사랑을 하면 꽃을 낳고

해 달 별과 사랑을 하면

해 달 별을 낳는다


시가 오는 날이면

너와 내가 하나로 되는 날

또 너희들 두 자궁이 뜨겁게 포옹하는 날

네 가슴에 귀 대보면

삶의 노래로 넘쳐 나거늘

아 삶이란 원래 이렇듯 아름다운 것인가


두번째 자궁

오 나의 태양

나의 우주여.


자기마당


너의 부름소리 너무 간절해

가던 걸음 멈추고

네 가슴에 살며시 귀 대보았다


-숙이야

N극에서 들려오는 소리

-숙이야

S극에서도 들려오는 소리소리


네 온몸 여기 저기엔

온통 나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 나거니

끌어당기는 그 힘 너무 커

그만 네 그 푸른마당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마침내 사랑이 열린다

우주가 열린다

네한테로 다가가 평생

너만을 위하는 N극

S극으로 살아가리니


자기마당


둘도 없는 내 사랑아.


뼈 섬 (骨岛)


40여년 몸부림 끝에

드디여 삶의 바다에서

섬으로 일어선 너


-허리에 생겼어요

허리사진 들여다 보며 하는

의사 선생의 말씀


-백만명당 한사람 꼴로 있는 병

바이두가 근심스레 해주는 말씀


그렇구나

차분히 허리 사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섬으로 변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


왜 날 이렇게 망가뜨렸냐 노려 보는 것 같아

저절로 머리가 숙어지는 이 아침

얼마나 힘들었으면 삶의 바다에서

반란을 일으켜 슬픈 섬으로 솟았을가


허리 울음소리 들려 오는 것 같아

얼른 두 눈 감아버렸다

그리고 다가가 꼭 끌어안아주었다

얼마나 힘든 세월 우리 함께 해왔더냐


내 삶의 바다에 새로 태여난 아기섬

온몸 여기저기에 이불짐 풀어놓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불청객

서러움에 떨며 이 불청객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억울함


섬아

뼈 깎는 아픔 딛고 우리 다시 일어나

웃으며 남은 생 잘 살아 보자

흰머리 뒤집어쓴 집체호가

눈물 흘리며 달려와 와락 끌어안아준다.


삶의 노래 1


언제부터였던가

삶의 세찬 바람에 휘청이다가

요추와 흉추는 꼭 잡고 있던 손을

그만 서로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 사이에 생겨난 커다란 분단선

천길계곡으로 떨어져버린 허리


계곡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깐힘 쓰며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몇천만대의 침

수많은 칼침과 불침들이

그들을 다시 이어놓으려 했으나

두 손 두 발 들고 다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온몸 각들의 반란에

삶의 끈 놓아버리고 통곡치고 있을 때

혜성인양 나타난 고마운 의사선생님

아까울싸

아픔과만 씨름해온 내 청춘 내 인생

몇십년 만의 리산가족 상봉이여


-고마워요

은인에게 허리 굽혀 절하며

흐느끼는 엄마의 목소리

하늘나라에서 금방 들려 오는 듯


수십년 아픔 갈아

진주로 태여난 요추 흉추야

우리 다시 떨어지지 말고 손에 손잡고

우리들의 푸른 노래 엮어나가자


삶의 노래

그것은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삶의 아리랑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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