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인이 개혁개방의 거점도시인 천진에서 첨단기술분야에 도전하여 천진영휘전자유한회사, 천진영휘전기유한회사, 향항영휘전자유한회사 등 3개의 단독기업과 천진산하전자유한회사, 천진아시아영휘전자유한회사 두 합작기업을 설립하고 업계에서 손꼽히는 선두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사회공익활동에도 앞장서 한결같은 찬사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가 바로 천진영휘전자유한회사 리사장이며 천진시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인 렴재윤(57살)이다.

◆‘철밥통’을 버리고 간고한 창업의 길에 도전
흑룡강성 칠대하시 벌리현 출신인 렴재윤은 1990년 흑룡강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누구나 부러워하는 ‘철밥통’ 단위인 흑룡강성농업개간총국에 배치받았다. 개혁개방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그때 렴재윤은 편안한 나날들에 무의미함을 느끼고 뜻 있는 자신이 편안하게만 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2년 후, 그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밥통’을 포기하고 도전의 길에 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개혁개방의 거점도시-천진이였다.
당시 개혁개방의 선두지역으로서의 천진에서는 중한 수교의 배경하에 많은 한국기업을 유치했다. 렴재윤은 지인의 소개로 천진에 진출한 한국 전자업체의 관리과장으로 입사했다. 3년간 열심히 일한 결과, 그는 외자기업의 선진관리모식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했다.
1996년 서른살 되던 해에 그는 청춘의 패기로 농부산물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8년에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는 농부산물수출장사에 큰 타격을 주었고 진입장벽이 낮아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던 탓에 첫 창업은 참패로 이어졌다.
그는 과학기술 함량이 높은 제조업 항목에 착안점을 뒀다. 평소 배우기를 즐기고 새로운 것을 파고 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우세를 발휘하여 자석을 생산하는 한국전자회사 관리부장으로 다시 입사했다. 그는 모든 심혈을 희토영자체(희토류 영구자석)에 쏟았다. 전문지식을 깊이 학습하고 희토류 영구자석 성능, 용도, 기술, 생산, 공정 등을 둘러싸고 재빠르게 업무를 익혔다. 성실한 업무자세를 바탕으로 뛰여난 제품판매 실적을 쌓은 그는 회사책임자의 인정과 관심을 받았다. 2003년 그는 천진 지역 총경리로 발탁되여 향후 창업의 발판을 본격적으로 닦게 되였다.
2007년 그는 고임금과 우월한 대우를 받던 외자기업 사장직을 과감히 접고 2차 창업에 뛰여들었다.
◆첨단기술 령역의 신천지를 개척
희토류 영자재료는 중국에서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분야이다. 네오디움철붕소 영자체(네오디움자석)는 희토류 영자성 재료에서 발전한 최신성과로 각종 전자제품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렴재윤은 이 첨단기술업계에서 반드시 자기만의 신천지를 개척해내기로 결심했다.
2007년, 그는 450만원을 투입하여 천진영휘전자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창업 초기 기업은 자금난, 기술인력, 은행대출 등 어려움을 겪었다. 천진 번화가에 있는 가족들의 부동산을 비롯한 친구들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자금난은 겨우 해결했지만 거래처 하나 없던 그는 거래업체를 찾아다녔다. 글로벌 업체들을 찾아 영휘 전자제품의 가격우세와 품질보증을 수없이 설명했던 그는 마침내 승인을 얻어 납품에 성공했다. 한동안의 간고한 분투 끝에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으며 당해에 1000만원 매출 실적을 올렸다.
렴재윤은 다년간의 실천에서 글로벌 첨단회사와 장기적으로 협력하려면 첨단기술인 네오디움철붕소 희토류 영자석 제품을 끊임없이 혁신해야만이 국내외 치렬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피타는 노력을 거쳐 제품은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를 실현했다.
첨단기술연구에 매진한 렴재윤은 생산에서 전통적인 네오디움철붕소(네오디움자석) 대공물을 절단하는 설비와 기술을 발견했다. 통상적으로 채용되는 것은 내원단두 절편기인데 칼날이 두껍고 공정이 락후해 능률이 떨어지며 특히는 귀중한 희토류 원료의 많은 랑비를 초래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이 면의 설비와 공법에 관한 과학기술 서적을 탐독하고 연구했으며 외국 친구들로부터 첨단기술 자료를 구해 반복적으로 파고들었다. 결국 일본산 다선 절단기 설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장악했다. 렴재윤의 열정과 도전정신에 감동한 일본 업체측에서는 공동연구를 하기로 했다.
네오디움철붕소 다선 절단기 개발에 성공하자 렴재윤은 신속하게 1000만원을 투입하여 모든 설비를 다시 갱신했다. 기업의 생산성은 몇배 향상되였고 생산 원가는 대폭 절감되였으며 제품질도 더욱 완벽해졌다. 기업도 전국 동종 업계의 선두기업으로 성장했고 이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2013년에 국가 발명특허를 획득했으며 그해 회사의 년매출액 또한 1억원으로 급증했다.
◆품질과 신용은 기업의 ‘생명’, 혁신과 인재는 기업의 ‘핵심 동력’
‘기업의 생명은 바로 품질’, 그가 신조처럼 여기는 말이다. 그는 기업이 첨단기술업계에서 발전하려면 반드시 제품의 품질, 기업의 신용을 제1의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렴재윤은 엄격한 품질 방침, 품질 표준, 검측 제도, 상벌 조치를 제정하고 직접 감독했다. 몇만원짜리 생산품의 품질이 떨어진 것을 보고 렴재윤은 이 작업장을 과감히 정리해버렸다.
렴재윤은 생산에 있어 인적 요인도 중요하지만 생산설비, 가공공정 또한 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중요한 요소라 늘 말한다. 그는 철붕소 자기제품과 관련된 설비를 조사하여 새로운 설비, 선진공정이 발견되면 적극적으로 검토한 후 구입에 나섰다.
현재 기업은 국내 동종업계에서 가장 앞선 3도두(三刀头) 설비 40대와 다선 절단 설비 7대, 레이저가공설비 10대, 전자동 도포기(涂布机) 생산라인 1개, 추가 자기 생산라인 6개, 자동착자설비 40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년간생산능력 120톤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10여년 동안 렴재윤이 설비 및 공정혁신을 위해 투자한 자금은 수천만원에 달한다.
다년간 렴재윤은 과학연구팀을 이끌고 국내 공백을 메우는 발명특허인 ‘네오디움철붕소 다공물 다선절단법’을 업계 최고의 생산공정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고도의 사회적 책임감으로 환원하는 기업가
다년간 그는 각종 공익활동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선후하여 빈곤학생 10명을 끝까지 학업을 견지하도록 후원했는데 아이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하여 뒤에서만 묵묵히 도왔다고 한다. 도움받은 학생들은 졸업한 후에도 경제 후원자에 대해 몰랐다. 장애인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장애인을 우선 채용하기도했다.
2022년 2월, 렴재윤은 만장일치로 천진조선족기업가협회 6대 회장으로 선출되였다. 그는 천진조선족기업가협회의 회원들을 이끌고 지난 1년 반 동안 회원사 돕기 행사, 천진 지역사회의 민족행사는 물론 천진 현지의 기부행사에도 적극 동참함으로써 천진조선족기업가협회의 이미지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기업경영에서도, 공익사업에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굳은 뜻을 갖고 있는 그의 무한한 도전과 비약은 래일도 계속될 것이다.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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