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서 류주시 류성현 고채무로족향 룡미촌 담촌툰의 200여명의 아이들이 마을 주민들의 축하 속에서 상장과 함께 장학금을 받았다.
이는 이 마을에서 39년째 이어오고 있는 불변의 ‘규칙’이다. 유치원생부터 연구생까지 상장이나 입학통지서를 받으면 마을에서 마련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장학금은 마을의 집집마다 모은 돈으로 마련된다.
◆아이들의 학업을 격려하기 위해 장학회 설립
알아본 데 따르면 마을주민들은 해마다 학년별로 장학금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는 상장을 받은 유치원생에게 20원, 중학생에게 200원, 연구생에게 1000원을 지급했다. 2026년 한해에만 200여명의 아이들에게 총 1.3만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장학금 전달 현장에서는 77세의 담기안 로인이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건네며 계속해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이 로인이 바로 장학회 설립을 제기한 사람중 한명이다.
1986년, 담기안은 마을에서 총 102명 아이들이 기말시험에 참가했는데 어문과 수학 두 과목을 모두 합격한 학생은 14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고중까지 다녔던 담기안은 이를 걱정하며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격려할 방법을 고민했고 장학회를 설립하자는 생각을 가졌다.
당시 마을주민들은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모은 돈을 아이들의 교육에 쓴다는 말을 듣고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듬해 1월, 장학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였다. 마을주민 1000여명이 사람당 10전씩 기부해 첫해 장학금을 마련했고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면 장려를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맛보게 되였다.
◆장학금 39년째 이어져
장학회가 설립된 지 7년 만에 담촌툰에서 첫 대학생이 나왔다. 마을주민들의 열의는 더욱 높아졌고 기부금도 점점 늘어났다. 담기안은 “마을에 반대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모두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당시 담기안은 벽돌공장에서 일하며 다섯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는 매년 빠짐없이 장학금에 돈을 보탰다. 그의 영향으로 외지에서 일하는 마을주민들도 기부에 동참했다. 담기안은 “어떤 사람은 50원을 내고 어떤 사람은 100원을 냈습니다. 우리 마을사람들이 똘똘 뭉쳐 장학금을 차곡차곡 모았습니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장학금 지급은 39년 동안 한번도 중단된 적 없었고 그동안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연 1만명에 달했다.
해마다 마을주민들이 얼마를 기부했는지, 장학금을 받은 아이가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 어느 학교에 입학했는지 등은 모두 담기안의 작은 공책에 정갈하게 기록되여있다. 그는 이 공책을 늘 지니고 다닌다. 그의 공책에는 또 다른 몇마디가 적혀있다.
“마을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해마다 장학금을 기부합니다. 학생들이 3호학생이 되도록 격려하고 모든 과목에서 1등을 다투게 합니다. 장학제도를 30년간 시행하니 인재가 끊임없이 배출되였고 그 기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담기안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마을에서 이미 120여명의 대학생이 배출되였다는 점이다. 현재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와 교원이 된 사람도 있고 공정사가 된 사람도 있으며 장학회에 계속 기부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이제 고향을 밝히는 ‘홰불’이 되였다.
담기안은 “아이들이 문화와 과학 지식을 더 잘 배워 국가와 사회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대중을 위해 좋은 일을 했으면 합니다.”고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마을주민들의 소박한 장려는 아이들의 꿈을 향한 열정에 불을 지폈고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다시 그 선행을 고향마을에 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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