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의 이야기□ 최장춘

2024-10-25 09:06:23

우리 연변에는 가는 곳마다 참나무가 우거져있다. 인공으로 심지 않았는데 붙임성이 좋아 그런지 참나무는 음달양달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듬성듬성 자라나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숲을 이룬다.

내가 참나무를 처음 본 것은 초중 1학년 때였다. 아버지 따라 하방호로 남계촌에 내려간 청명날 아침, 나는 덜컹거리는 소수레에 앉아 마을 서쪽 산으로 땔감을 하러 갔다. 날씨는 봄날치고 구름 한점 없이 유난히 따스했다. 산기슭에는 드문드문 성묘하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언뜰거렸다. 후미진 수레길 주변은 갖가지 이름 모를 나무들로 꽉 차있어 점입가경을 이뤘다. 그중에서도 형체가 구불구불하고 우듬지에 가랑잎이 매달려 간들거리는 나무가 신기해 아버지한테 물어보았더니 참나무라고 알려주었다.

마을사람들은 참나무를 보통 가둑나무 또는 도토리나무라고 불렀다. 당시 참나무는 석탄 없는 촌동네에서 좋은 땔감이였다. 이른 가을 단풍이 살짝 물들 무렵 촌민들은 서둘러 뒤산에 올라가 땔감을 장만했다. 헤픈 싸리나무보다 화염이 왕성한 참나무를 모두 좋아했다. 나무군들은 먼저 참나무의 약한 곁가지를 잘라 단을 묶어 잠재웠다가 탈곡이 끝나는 대로 집으로 실어날랐다. 산세가 가파로우면 소수레 대신 발구를 썼는데 나무단을 겹겹이 실은 꽁무니에 꼭 거쿨진 참나무를 찍어 거꾸로 매달아놓았다. 왜냐하면 내리막길을 질주할 때 엉성한 참나무가지가 땅에 박히면서 저항력이 생겨 천천히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집에 도착하면 낫나무는 흔히 바람가림으로 마당에 무졌고 툭한 등걸은 골라서 반토막씩 쪼개여 담장 옆에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장작더미가 높을수록 동네사람들로부터 진짜 살림군이란 칭찬을 받는 터라 모두 마누라 닥달에 못이겨 바깥량반들끼리 이웃마당을 기웃거리며 낟가리 높이를 비겼다. 이글이글한 참나무의 화력을 빌어 마을의 건조실에서 푸른 담배잎을 노랗게 말리웠고 집집마다 때시걱을 설설 끓이며 취락의 향연을 지폈다. 참나무로 훈훈하게 덮혀진 뜨뜻한 구들에 앉아 갓 구운 감자를 후후 불며 먹던 재미도 별미거니와 잉걸불이 담긴 화로 주위에 빙 둘러앉아 로인들이 엮어낸 구수한 삼국지 이야기는 그야말로 목가적인 생활정취를 물씬 풍겼다.

연구에 따르면 참나무가 수형을 갖추는 데 6년, 완벽하게 자라는 데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세련된 사나이의 근육질을 닮아 참나무는 재질이 치밀하고 단단한 데다 쉽게 썩지 않은 특성을 가져 시골에서는 일상을 돕는 생활가구로부터 가축을 기르는 울타리며 김치움 덮개며 지어 수레바퀴와 축까지 죄다 그 재료를 썼다. 더우기 여름철 홍수방지 시기엔 쇠사슬 대신 참나무로 강녘에 삼각형 또는 제형 모양의 틀을 짜놓고 그 안쪽 공간에 큼직큼직한 돌들을 두두룩이 무져서 방파석축을 만들었다. 그것은 강뚝에 덮치는 물살을 막아주는 전초병 역할을 하여 장마철의 물란리를 피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참나무는 공예작물이기 앞서 훌륭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떨어진 도토리를 리용해 묵, 된장, 술, 떡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중 도토리묵은 영양소가 풍부해 우리 민족이 즐겨 먹는 료리로 손꼽힌다. 워낙 갈색빛이 도드라진 도토리묵은 매끌매끌하여 옛날 사돈밥상에 금기시했다는 일화도 있었지만 쌉쌀하고 시원한 식감이 입맛을 돋궈 요즘은 귀빈들의 연회상에도 자주 오르는편이다.

참나무의 열매는 여러 동물들에게도 좋은 먹거리가 된다. 재밌는 건 참나무와 다람쥐의 일화이다. 여름내 참나무줄기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재롱을 피우던 다람쥐는 땅에 떨어진 무르익은 도토리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흙 속에 묻어놓는다. 겨울나이 차비로 몰래 숨겨두지만 다람쥐는 건망증이 심한 탓에 도토리를 숨겨놓고도 찾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대신 이듬해 숨겨놓은 도토리에서는 싹이 우썩우썩 돋아나는데 결국 다람쥐가 참나무의 령역 확장을 도와준 셈이 된다.

참나무는 잎, 줄기와 열매를 포함해 하나도 버릴 것 없어 저력지재의 통념을 깨고 과학기술분야에서 인체건강을 돕는, 맛 좋고 다양한 보건품들을 륙속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시 나무는 열매로 알려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참나무는 기실 자연섭리에 순종하는  유연성과 자유분방의 몸짓을 겸비한 튼실한 생명체이다. 숲속을 걷노라면 해빛을 듬뿍 담은 잎새들이 바람 타고 너넘실 춤추는 것이 꼭 무수한 물방울을 튕기며 처절썩 쏴─ 밀려와 온몸을 흠뻑 적셔주는 느낌을 준다. 그보다 겨울의 참나무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불요불굴의 상징이기도 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검은 침묵이 얹힌 두툴두툴한 가지에 해솜 같은 눈송이들이 뭉게뭉게 피여난다. 이따금 짓누르는 무게를 못이겨 파르르 몸을 떨다 끝내 우직끈 툭탁─ 소리와 함께 나무가지는 부러지고 아픔이 고인 상처엔 시허연 속살이 드러나 시선을 자극한다. 하지만 참나무는 한차례 시련을 겪을 때마다 땅속에 뿌리를 더 깊이 박는 힘을 과시했다. 역시 숲의 왕자란 칭호에 손색없는 강인한 스타였다. 아마 그런 싱싱한 기운이 신비로워 옛날 비보풍수를 믿는 이들이 액운의 매듭을 풀려는 뜻에서 갈림길 참나무를 찾아 눈감고 합장하는가 하면 붉은 댕기나 천오래기를 나무등걸에 매여놓고 소원성취를 빌었나 보다.

일전 일부러 남계촌 뒤산을 찾았다. 산의 릉선과 륜곽은 옛 모습 그대로였으나 숲의 색상은 좀 바뀌였다. 과거 사시절 푸른 소나무가 경관을 이뤘다면 지금의 산허리와 골짜기는 대부분 참나무들로 가득 차있었다. 숲속 입구에 첫발을 딛는 순간 저도 몰래 홀로 선 한그루 참나무 앞에 멈춰섰다. 얼핏 보매 마을을 지켜선 수호신처럼 오랜 세월 풍상고초를 겪은 흔적이 력력했다. 두텁고 넙죽넙죽한 이파리는 장알 박힌 농부의 손바닥을 방불케 했고 심하게 패이고 비틀어진 나무가지와 땅 우에 드러난 뿌리는 산뱀처럼 우불구불해 보기 흉물스러웠다. 문득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떠올랐다. 멋지게 생긴 다른 나무들은 진작 하나, 둘씩 도시의 번화한 거리, 아늑한 정원을 찾아 옮겨앉은 지 이슥한데 유독 참나무만 나서 자란 땅에서 안깐힘을 쓰며 버티고 있으니 알짝지근한 감이 들었다. 참나무는 남들의 흥성흥성해진 몸값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오직 산새들이 우짖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정복의 꿈을 몸속 나이테에 또박또박 새겨넣는 걸로 생존의 립지를 굳힌다.

  세상에 생각하며 자라는 나무가 있다면 나는 선참 참나무에게 찬성표를 던지겠다. 시골에 묻혀산들 어떠랴, 때론 훤한 공간을 차지하고 내노라 살기보다 구석진 곳이나마 자기 령역의 몫 만큼 야무지고 옹골차게 키돋움하는 자세가 훨씬 값진 의미를 갖는다. 비록 달나라 계수나무처럼 시인의 붓끝에 실린 빛나는 존재가 아니여도 참나무란 이름 그대로 참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이 달빛 못잖게 현란한 록색의 광환을 뿜는다. 아무렴 설자리 아는 나무가 누리의 경의로움을 자아내지 않을가, 참나무가 있어 산은 충실하고 듬직하다. 오늘따라 왠지 맘속으로 고향 산언덕에 푸르청청할 참나무의 이름을 부르며 실컷 음미해보고 싶다.

来源:延边日报
初审:金麟美
复审:郑恩峰
终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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