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 전옥선

2023-06-16 09:16:53

그날도 안개비가 내렸다. 안개비가 내리는 계절이 오면 나는 명치끝에 흥건히 맺혀있는 피멍 같은 그리움을 토해내고 싶어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장안골로 향한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미아처럼 정처없이 헤매거나 살풀이를  하듯 꺼이꺼이 목메인 울음을 토해낸다.

“언니야! 내 그리운 언니야! ”


1

안개가 자욱한 초여름의 이른아침에 벌방에 있는 외삼촌을 찾아갔던 언니가 해질녁이 되여서야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기 바삐 언니는 랭수 한바가지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는 곧장 아버지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벌방으로 시집을 가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언니가 시집을 가다니? 그럼 나는 어쩌라고! 나는 울먹거리면서 언니를 따라 안방에 들어가 그의 옆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앉았다. 언니가 당장이라도 나를 떼여버리고 시집을 갈것 같아 나는 언니의 치마자락을 손가락에 뱅뱅 감아쥐고 놓지 않았다. 언니는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꼭 그래야 하겠니? 후회하지 않겠어?”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후회하지 않을게요. 외삼촌이 그러는데 그 사람은 정미소 전기를 책임진 기술자이고 법이 없이도 살 만큼 마음도 어질고 착해서 녀자를 고생시키지 않을 거라네요.”

아버지는 엽초를 굵직하게 말아 뻑뻑 태울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런 날이 올 줄 미리 알고 있은 듯 아버지는 언니를 말리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당장이라도  언니를 전기수리사란 사람한테 시집보낼 잡도리였다.

“언니야! 그럼 뒤집 용복이 오빠는 어떻게 해?”

나의 말에 언니가 깜짝 놀라는 듯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놀라는 듯했지만 그저 그 뿐이였다. 그는 이미 결심을 내린듯 담담했다.

언니는 용복이 오빠한테 시집갈 줄 알았다. 평소에 용복이 오빠는 자신보다 언니를 더 끔찍이 생각해주었고 언니도  용복 오빠를 좋아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벌방으로 시집을 간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언니, 용복이 오빠를 사랑하지 않았어?”

“사랑한다고 다 결혼을 하는 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넌 몰라도 돼!”

나는 언니가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한테 시집을 간다고 하겠는가. 나는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갔다. 어떻게든 언니가 벌방으로 시집가는 것을 막고 싶었다.

언니가 아버지에게 재촉했다.

“아버지, 될 수만 있으면 저의 결혼을 서둘러주세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왜? 그쪽이 무슨  급한 사정이라도 있다냐?”

“그쪽 사정보다 화자가 학교 가려면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게 좋아요. 새 학기부터는 학교에 들어가야 해요.”

이때 정주간 문이 벌컥 열리며 우람진 체구의 용복이 오빠가 불쑥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다리가 쥐여져있었다. 내가 쪼르르 그의 앞으로 뛰여갔다.

“용복 오빠! 언니가…”

나는 언니가 벌방으로 시집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일러바치려 하였다. 그런데 언니가 안방에서 바람처럼 뛰여오더니 두 손으로 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언니가 뭘?”

용복 오빠가 이상한 눈빛으로 나와 언니를 번갈아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가 고개까지 저으면서 강하게 부정하였다. 용복 오빠가  손에 든 검은 봉다리를 언니에게 내밀었다.

“오늘 캔 도라지야! 이걸 끓인 물이 천식에 좋다 하니 아버님께 아침저녁으로 끓여드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언니가 켕기는지 기여드는 소리로 말했다.

“갔던 일은 잘됐어?”

“응! 새 학기에는 화자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언니는 감히 용복이 오빠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잘됐다! 화자가 학교 가는 문제가 해결됐으니 한시름 놓았다. 화자는 좋겠다.”

용복이 오빠가 나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그는 언니가 선보러 갔다 온 줄은 모르고 나의 학교문제로 외삼촌을 만나고 온 줄로 알고 있는 모양이였다.

용복이 오빠가 신발도 벗지 않고  선자리에서  집을 나섰다. 마치 집안을 버티고 있던 커다란 기둥이 빠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서운했다. 그러면서도 미안했다. 왜 내가 그에게 미안한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집을 나가자 언니가 나에게 다짐을 했다.

“너, 언니가 벌방으로 시집간다는 말을 용복이 오빠한테 하면 안돼!”

“왜 말을 하면 안돼? 어쨌든 알게 될 텐데.”

“결혼식을 할 때까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

“용복이 오빠는 우리에게 친오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였어. 그런데 왜 이렇게 하는 거야?”

“널 위해서 그러는 거다.”

“싫어. 난 용복이 오빠가 좋단 말이야!”

태여날 때부터 나는 몸이 약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팔삭둥이로 태여난 나는 모유라고는 한모금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이 적부터 발육이 늦어 다른 애들보다 키도 작고 체중도 딸렸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나 마루에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어지럼증으로 비시시 옆으로 쓰러져 인사불성이 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용복이 오빠가 업고 병원으로 뛰여가군 하였다. 약골이다 보니 열살이 되도록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용복이 오빠가 학교 가고 오는 것을 도와준다며 학교에 한번 알아보라고 하였다.

“아빠, 언니가 시집가면 나는 어떻게 해?”

내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자 아버지가 한숨을 푹 내쉬였다.

“울지 말아. 언니가 널 데리고 시집을 간다는구나.”

“거짓말! 어떻게 날 데리고 시집가? 누가 동생을 데리고 시집가는 색시를 좋아한대?”

“너를 데리고 시집가는 조건으로 그 사람한테 시집가는 거야. 거기 가면 벌방이라서 학교 다니기에도 여기보다 편해. 그 사람이 전기수리부가 잘되면 아버지도 모셔갈 수 있다고 했어! 그러면 우리 식구가 다시 한집에서 살 수 있을 거야.”

언니는 결국 나 때문에 용복 오빠를 포기한 것이다. 학교와 가까운 벌방에서 나를 공부를 시키기 위하여 그 남자를 선택한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애물단지였다. 언니의 인생을 갉아먹으려고 태여난 존재인지도 모른다.

내가 태여나던 해, 언니는 열살이였다. 언니에게는 동생이 태여난 것이 자랑거리였던 모양이다.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면서 동생이 태여났다고 소리치고 다녔다고 했다.

“내 동생이 태여났어요! 아기가 얼마나 작은지 내 손바닥만해요! 그런데 작아도 손과 발이 다 있어요!”

내가 팔삭둥이로 태여나서 특별히 작았고 언니는 그렇게 작은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였다. 언니가 열을 올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때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는 언니에게 나를 맡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동생이 태여났다고 그렇게 신이 났던 언니는 결국 운명처럼 나를 떠안게 되였고 나는 벼잎을 갉아먹는 메뚜기처럼 언니의 잔등에 붙어 그의 인생을 파먹고 살았다.


2

언니가 서두르는 바람에 언니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결혼식날 제일 신바람이 나서 앞뒤를 뛰여다닌 사람은 외삼촌이였다. 나도 언니의 치마자락을 꼭 붙들고 한시도 떨어질세라 뒤꽁무니를 따라다녀 언니가 첫날상 받을 때 외삼촌한테 한바탕 욕까지 얻어먹었다. 형부와 언니는 여덟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왜소한 체구인 형부에 비해 언니는 빼여난 아름다운 미모와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어 결혼식날 많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형부는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맨날 화난 사람처럼 미간을 잔뜩 찌프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선녀같이 아름다운 녀자와 결혼해서 좋겠다고 했지만 당사자인 그는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언니를 칭찬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그는 집에 들어와서 신경질을 부렸다.

“밖에 나가서 어떻게 행동하길래 사람들이 다들 당신만 칭찬해? 난 바보가 된 기분이야!”

“제가 뭘요? 전 그 사람들에게 칭찬해달라고 한 적이 없어요.”

형부는 사람들이 언니의 미모를 칭찬하는 것을 싫어했다. 아니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형부가 그럴 때마다 언니는 그냥 웃기만 했다.

이상했다. 형부는 집에만 들어오면 쌀쌀맞고 심통스러웠지만 밖에서는 무던하고 착한 사람이였다.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공짜로 전기 수리를 해주기도 하고 현금이 없으면 외상을 주기도 하였다. 배추나 무우를 가져다주면 그것으로 외상값을 메꾸기도 하였다. 그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버는 일은 자기가 떠맡고 언니는 집에서 집안일만 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언니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보였다. 기관지 천식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치료비도 드려야 하고 어지럼증으로 자주 쓰러지는 나의 뒤바라지를 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고 싶어했다.

언니는 형부 몰래 산에 가 산나물이나 혹은 약재를 캐다가 시장에 넘겨 돈을 모았다가는 나의 약을 지어오군 하였다. 나의 약값은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동생을 데리고 시집을 온 것도 미안한데 약값까지 형부의 신세를 지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라고 여겼다.

언니가 벌방에 시집온 이듬해 가을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가실 줄을 몰랐다. 기별을 받고 우리가 장안골에 도착했을 때 용복이 오빠가 아버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돈을 벌면  아버지를 모셔다 같이 살겠다고 했던 언니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듯 자책을 하며 울었다.

“아이고 아버지! 왜 이리 급히 가십니까? 이 불효를 어찌합니까? 아버지를 홀로 두고 시집을 가는 게 아닌데…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언니가 울다가 기절을 하자 형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 맸다. 용복이 오빠가 랭수를 떠다 입에 물고 언니 얼굴에 뿜었다. 그러자 언니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3

그때 나는 겨우 소학교 1학년이였다.

아버지를 잃자 유일한 혈육이란 언니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언니는 깐깐한 형부의 시집살이에 큰숨도 쉬지 못하고 산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린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는 것일가? 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막막함을 이기지 못해 고향집 마당 한복판에 드러누워 이리저리 태질하면서 울었다.

그날 따라 소낙비가 크게 내렸다. 나는 그 비를 다 맞으면서 진흙탕에서 구울었다. 이렇게 살거면 아버지를 따라 함께 가고 싶었다.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일찍 나의 탄생은 나의 첫 불행이였다. 나는 처음부터 태여나지 말았어야 했다. 허약하고 병든 아기로 태여나면서 나는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를 보는 아버지의 시선에서 나는 아버지는 나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느꼈다.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장본인이지만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외로워하시는 아버지를 볼 때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군 하였다. 아버지가 나를 꼬옥 껴안아줄 때면 아버지의 가슴 아픈 회한이 슴배여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홀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나는 죄인이였다. 그리고 나는 언니에게도 죄를 지었다. 언니는 나 때문에 지금의 형부를 선택했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나서부터 언니에 대한 형부의 의심은 더욱 구체화되였다. 그는 언니와 용복이 오빠의 관계에  대하여 의심을 하기 시작하였다.

“너, 그놈이랑 도대체 무슨 사이야? 그놈이 너의 얼굴에 물을 뿌릴 때부터 알아봤어. 한두번 한 솜씨가 아니였어. 그리고 자기가 뭔데 당신 아버지의 곁을 지켜? 자기가 뭐 이집 사위야? 아들이야?”

“아무도 없으니깐 지킨 거지, 다른 뜻이 있어서겠어요? 시골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인심이 후해요.”

“인심이 좋아서 그랬다고? 인심이 좋으면 남의 시체를 지키나? 지금 내 앞에서 그놈의 역성을 드는 거야? 두고봐! 내가 그놈을 가만두나!”

용복이 오빠 덕에 아버지의 장례를 쉽게 치뤘는데 감사하다는 말은 못할지언정 어찌하여 그것이 싸울 단서가 되는지 나는 도무지 리해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혼을 부르고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갈아입히는 일을 모두 용복이 오빠가 맡아서 했다. 동네 청년들을 동원하여 굴심을 파는 일도 용복이 오빠가 하였다.

그랬는데 지금에 와 그런 용복이 오빠를 걸고 넘어지는 형부의 속을 알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거슬리는 것 같았다. 언니가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형부가 흠잡을 일은 꼭 있었다. 흠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 앞에서는 벗어나는 재간이 없었다.

아버지까지 돌아가시자 나와 언니는 장안골에 갈 일이 없게 되였다. 그래서 언니는 시골집을 아예 용복이 오빠네를 주었다. 집은 창고로 쓰고 앞마당 채전에 고추를 심으면 김장철에 고추를 사지 않고도 자체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했다고 그동안 진 빚을 다 갚지는 못하겠지만 용복이 오빠를 위하여 뭔가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어  언니는 기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언니가 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도라지 한주머니를 들고 왔다.

“웬 도라지야?”

“오늘 시장에서 용복이 오빠를 만났어. 너한테 달여 먹이라고  산도라지를 한포대나 주고 갔다. 네가 아버지를 닮아서 기관지가 안좋다는 것을 어찌 아는지…”

“이렇게 많은 것을 언제 다 먹어?”

“도라지무침도 해먹고 도라지부침개도 해먹고 그리고 도라지밥도 해먹고 도라지로 할 수 있는 건 다할 거야. 그렇게 먹다 보면 너의 기관지가 좋아지지 않겠니?”

“용복이 오빠는 우리한테 왜 이렇게 잘하는 걸가?”

“그러게… ”

언니가 말끝을 흐렸다. 용복이 오빠한테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사람한테 못할 짓을 했지…”

“다 내 탓이야.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내가 울먹거리자 언니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나만 아니였더라면 언니는 지금쯤 아마 장안골에서 용복이 오빠하고 결혼하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아버지도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도라지만 손질하고 있었다.


4

그때 형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도라지 자루를 보고 량미간을  잔뜩 찌프렸다.

“또 그놈이 왔다 갔어? 집은 어떻게 알고? 이제는 내 집에까지 들락거리는 거야?”

“집이 아니고 시장에서 만났어요.”

“시장에서는 어떻게 만나? 서로 장날에 만나자고 약속을 한 거야?”

“약속한 게 아니라 우연히 만났어요.”

“우연히 만났다는 것을 증명해봐!”

“그걸 어떻게 증명해요?”

“당사자들이 잘 알거 아냐?”

언니가 할 말이 없는듯 주머니를 들고 말없이 주방으로 갔다. 형부가 주방까지 쫓아가서 시비를 걸었다.

“당신은 집을 주었는데 그놈은 겨유 이깟 도라지야? 밑진 장사네.”

“비워두면 그대로 허물어질 집이예요. 용복이 오빠의 신세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뭐라고? 신세? 맨날 신세, 신세하는데 대체 그 신세가 어떤 건지 들어나 보자구!”

언니는 작정이나 한 듯 하나하나 손으로 꼽았다.

“봄이면 밭갈이해주고 여름이면 기음 매주고 가을이면 가을해주고… 화자가 아플 때마다 업고 병원에 가주고 아버지가 아플 땐…”

“그만! 그놈이 너네 집 일을 다해줄 때 너네 아버지나 너는 도대체  뭘 했는데? 그놈이 그냥 해줬을 건 아니잖아. 대신 넌 그놈한테 뭘 해주었어?”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해준 게 왜 없어! 무엇을 주든 주었겠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뭘 주었는지 솔직히 말해봐!”

“해준게 있었다면 이렇게 미안하지 않겠죠.”

“미안해? 그래서 그놈한테 시집가지 못한 것을 후회해?”

형부가 도라지주머니를 걷어찼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주방 쪽에 있던 기름병을 쥐고 뿌렸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기름병이 맞은쪽 벽에 부딪혀 박산나고 사처에 기름이 튕겼다. 유리쪼각 하나가 파편처럼 언니의 이마에 박혔던 모양이다. 언니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피를 보는 순간 나는 미친 사냥개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형부한테 달려들었다. 어느새 나의 손에는 가위가 들려있었다. 나는 가위로 그의 심장을 찌르고 싶었다. 형부가 나의 손목을 비틀어 가위를 빼앗아냈다. 나는 이발로 그의 손등을 물어뜯었다.

“너, 사람을 물어?”

형부가 악이 나서 나를 걷어찼다. 물건처럼 뿌리여나간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일어나서 그의 얼굴을 물어뜯고 싶은데 까딱 움직일 수 없었다. 형부가 당장 아작을 내고 말겠다는 얼굴로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한 건데 내가 너를 집에 들인 게 잘못이다.”

형부가 나에게 발길질을 하려고 하는 찰나에 언니가 나의 몸을 덮쳤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 제 잘못이예요. 그러니 제발 애한테 이러지 마세요. 제가 다시는 장안골 사람들과 만나지  않을게요. 그러니 노여움을 풀고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언니가 다시는 장안골 사람들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싸움은 일단락되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이 집에 더 이상 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는 형부를 피해 여기저기 친구 집에 가 자거나 외삼촌네 집에 가 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5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부담이 과중해지자 한동안 괜찮던 나의 어지럼증이 다시 도졌다. 길을 가다가도 어지러워서 한참씩 앉아있어야 했다. 언니가 내가 먹을 약이라면서 까만 환을 지어 가마목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이 약만 먹으면 현기증이 없어진대!”

언니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쥐똥 아니야?”

“쥐똥이 아니고 몸에 좋은 거야.”

“글쎄 뭐야?”

“몰라도 돼. 아무튼 몸에 좋은 거야.”

이때 형부가 정지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푸르뎅뎅해 언니를 쏘아보더니 가마목에 널어놓은 약을 부엌에 통채로 확 던져버리며 소리쳤다.

“너 요새 해산한 선자네 집을 왜 그렇게 번질나게 다녀? 선자 남편 꼬시느라 그러는 게 아니야? 바른 대로 말해!”

형부는 다짜고짜 언니의 머리채를 잡아서 한고패 휘두르더니 식장 앞에 확 내팽개쳤다. 악- 하고 언니의 비명소리와 함께 식장유리가 박산나는 아츠러운 소리에 나는 몸이 오그라들고 온 집안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내가 깨여났을 때 언니가 부엌 밑에서 약을 줏고 있었다.

“언니, 우리 여기서 떠나자!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언니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고 나를 달랬다.  형부가 의심이 많고 과격하지만 생활비나 학비는 모두 그가 번 돈으로 쓰는 것이라며 그가 우리한테 필요한 리유와 우리가 그를 아직 떠날 수 없는 리유를 설명했다. 나는 학교는 그만두면 그만이라고 했고 언니는 절대 중학교까지는 졸업해야 된다고 우겼다.

“생각해보면 형부도 불쌍한 사람이야.”

“형부가 불쌍하다구? 형부는 가해자구 언니는 피해자야. 가해자가 불쌍해?”

“형부가 나를 의심하는 것은 내가 믿음을 주지 못해서야.  내가 의심을 사지 않도록 잘하면 다신 이런 일 없을거야!”

나는 언니가 절대 형부에게서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부는 서로 싸우면서도 떨어지기 어려운 무언가가 따로 있는 모양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언니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 언니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내 주장을 내세울 수 없었다.

봄바람이 불어오고 산야가 푸른빛으로 바뀌여가는 계절이 오자 언니는 동네 아줌마 몇이랑 봄나물을 캐러 나갔다가 흥분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화자야, 영이 엄마랑 있잖아! 산나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라.”

“언니 캐라는 걸 모두 캤겠네!” 

“응! 나물이름을 알려주랴 뱀이 나올가 호들갑 떨어서 안심시켜주랴 오늘 얼마 못캤어.”

“언니가 산골사람인 걸 그들이 모르잖아?”

나는 기분이 상쾌해지며 신이 나서 말했다.

“래일부터 우리 집 날마다 찾아오겠대. 내가 안 가면 자기네는 못 간단다!”

언니는 팔을 벌리며 기지개를 쭉 켰다. 아닌 게 아니라 형부는 아줌마들 앞에서 세상 제일 다정한 남편인양 간식거리까지 챙겨주며 언니를 산으로 떠나보냈다. 화자 형부 최고라는 찬사를 잔뜩 받으며 헤벌쭉하더니 등을 돌리는 순간에는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여 얼굴을 잔뜩 찡그리는 것이였다.

여러 날 산으로 오르내리더니 언니는 형부가 눈치채지 않게 봄나물을 좀씩 팔기 시작하면서 수입이 있게 되였다.

“화자야! 이제 시가지에 있는 큰 병원에 한번 가보자. 공부 계속하자면 쓰러지는 증상 꼭 고쳐야 돼!”

“언니 이러다 형부 가만 있겠어? 집에 언니 없으면 또 의심을 할 텐데.”

“눈치껏 해야지! 넌 공부하는 데만 집중하고 형부와 언니 일에는 신경 쓰지 말어!”

해빛이 강해지고 대지가 짙은 푸른색으로 변한 한여름 언니의 산행은 계속 되였고 형부의 신경은 다시 날카로와졌다.

오후 공부를 마치고 오후 늦은 시간에 귀가를 했는데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 언니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형부가 들락날락하며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나도 저으기 조바심이 났다.

“도대체 어디로 싸다니는 거야?”

“나물 캐러 갔을 거예요.”

“무슨 놈의 나물이야! 장안골의 그놈을 만나려 다니는 건 아니야?”

바깥은 완전 어두워졌고 언니는 종내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나는 안절부절 못했고 형부는 형부 대로 길길이 뛰고 있었다. 형부는 입에서 구렝이가 나가는지도 모르고 언니를 마구 욕하기 시작했다. 형부의 점점 황당해지는 행동에 나는 무섭기도 하고 억이 막히기도 하였다.

그때에 삐걱 하고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야?”

내가 총알같이 밖으로 뛰여나갔다.

“늦어서 미안해!”

언니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형부가 대바람에 달려와 언니를 몰아세웠다.

“그 자식을 만나러 간 거지?”

언니가  뒤잔등에 메고 있던 주머니를 내리면서 말했다.

“미안해요. 당신이 오기 전에 오려고 했는데 산에서 길을 잃어서 헤매다 보니 늦었어요.”

“둘이서 놀다 보니 해가 진 줄도 몰랐겠지.”

형부가 계속 깐죽대자 언니가 어디서 그런 힘이 솟구친 것인지 주머니를 거꾸로 들고 털어냈다. 그 안에서 삽지뿌리들이 쏟아져나왔다.

형부가 삽지뿌리를 발로 마구 밟아놓고 걷어차며 소리쳤다.

“이딴 건 뭘 하러 캐는 건데?”

“돈이 필요했어요.”

언니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전처럼 눈치를 보며 쩔쩔 매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에 더 화가 났던지 형부가 울러멨다.

“돈이 왜 필요한데? 혹시 그놈이랑 도망가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던 거야?”

언니가 기가 막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자 형부가 언니의 멱살을 덥석 잡았다.

“날 무시해? 내가 그렇게 우스워?”

형부의 부릅뜬 눈에 살기가 번뜩이였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형부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언니는 저의 병을 치료해주려고 그래서 매일 산나물을 캤어요. 언니 잘못이 아니예요. 다 저의 잘못이예요. 제가 이 집을 나갈게요. 그러니 화를 푸세요!”

그 말에 형부가 이윽히 내 쪽을 째려보더니 언니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언니가 몸의 중심을 잡고 있지 않았던지 물 먹은 흙담처럼 한쪽으로 무너져내렸다.

“언니!”

나는 목구멍이 꽉 막히고 몸이 굳어져 꼼짝할 수가 없었다. 언니의 바지가랑이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작은 내를 이루며 삽지뿌리가 들어있던 주머니를 빨갛게 물들였다.

아! 피!

내가 새된 소리를 지르자 형부가 언니를 덥석 그러안았다.

“여보! 당신 왜 이러는 거야! 당신이 아이를 가졌던 거야? 아! 우리 아기!”

형부가 절규하면서 손으로  피를  그러모았다. 그의 두 손이 벌겋게 물들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도 그만 정신을 놓고 쓰러지고 말았다…

안개비가 내린다. 따스한 해살이 비추기 시작하자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하얀 구름이 산등성이를 휘감으며 하늘을 향해 하얀 줄다리를 놓았고 알록달록 들꽃이 가득 피여난 내 고향 장인골에 언니가 한없이 부드럽고 평안한 미소를 짓고 서있다.

“언니~~”

달려가는 나를 향해 팔을 벌리던 언니가 구름다리를 타고 훨훨 하늘나라로 날아오른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목놓아 언니를 부르다 눈을 떴다.

나는 병원침대에 누워있었고 용복이 오빠가 침대 옆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언니가 구급실에 있다고 알려주며 나의 손을 꼭 잡아주는 오빠의 손이 몹시 떨리고 있었다. 과도한 출혈로 언니는 종내 깨여나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악몽 같은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언니는 임신 두달 만에 아이를 잃고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이 무슨 저주인가. 엄마는 나를 낳다가 가고 언니는 자신의 아기를 지키지 못하고 갔다.

“언니!”

나는 가슴이 미여지고 극도의 슬픔으로 기절하고 깨여나기를 반복했다. 환각 속에서 나는 언니의 환영을 보았다. 언니가 나의 손을 꼭 잡고 장안골을 향해 뛰여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나와 언니를 어서 오라 부른다. 그리고 용복이 오빠가 언니를 부르면서  뒤쫓아오고 있었다…


6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어느덧 언니가 시집을 갈 때의 나이가 되였다. 세월은 그렇게 많이 흘렀지만 장안골에는 지금도 그날처럼 안개비가 내렸다. 어느 날 문득 형부 생각이 났다. 이미 남이 되였지만 정말 한번은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때 왜 그렇게 언니를 못살게 굴었는지, 그것이 알고 싶었다.

언니가 죽은 지 일년도 채 못되여 형부는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아마도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기 어려웠나 보다. 죽을 때까지 그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자나 깨나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그 의문 때문에 나는 기어이 그를 찾아갔다.

그는 나를 보고 해맑게 웃었다. 웃어? 뭘 잘했다고 웃어? 나는 역겨웠다. 면상을 한대 갈겨주고 싶었다. 언니의 목숨을 앗아간 그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불렀다. 그는 나를 언니로 착각하고 있었다.

“미자야! 미자야!”

그가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언니를 죽게 한 자가  언니를 잊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이제 왔어… 우리 아기는? 집에 두고 온 거야?”

그는 지나간 모든 기억을  잊은 듯했다. 다만 언니와 아기만 기억하는 모양이다. 자신이 그들을 죽게 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바락바락  악을 쓰던 그 살기와 사악함은 온데간데 없고 순하디 순한  양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양의 가면을 쓴 듯 전혀 다른 사람이였다.

“누구 마음대로 잊어? 난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누가 당신한테 그것을 잊어도 된다고 했어? 당신은 죽을 때까지 그날의 일을 잊으면 안돼!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언니의 모습을 잊어서는 안돼!  당신 때문에 언니가 죽고 언니의 아기도 죽었잖아! 잊지 말고 기억해내!”

내가 악을 쓰면서 고래고래  소리소리 질렀다.

그는 한사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여보! 우리 아기는 죽지 않았어! 살아있어! 봐! 여기 있잖아!”

그는 자신의 베개를 나에게 내밀면서 우리 아기라고 했다. 아기가 배가 고파서 운다며 그는 베개를 어루쓸며 분주하게 왔다 갔다 했다.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이미 저주받은 삶을 살고 있었다.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때,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어서 왔지만  이제 그 질문조차  할 수 없게 되였다. 시원할줄 알았는데 인간으로서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형부였고 미우나 고우나 그 사람 덕분에 중학교까지 다녔는데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였던 것은 아니였다. 그들의 평화를 깬 것은 형부가 아니라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나의 마음 한자락에는 그에 대한  미움이나 공포만이 아니라 련민도 함께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를 용서한 것은 아니였다. 죽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폭풍우가 지난 뒤의 고요 같은 무거운 침묵이 마음에 깃들면서 미움으로 들끓던 마음이 조용히  깃을 접는 듯 무척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쇠사슬에서 풀려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그들을 내려놓고 제대로 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람을 등지고 병원을 나서는데 등뒤에서 끊임없이 미자를 부르는 소리가 빈터의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언니를 불러보았다.

“언니야! 사랑하는 언니야!”

그날처럼 오늘도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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